지난 토요일 아침 한 공중파 정보프로그램에서 초등학교 4학년생 무리가 비가 오는 산책길을 걷는 장면이 등장했다. '15분 걷기'란 자막이 깔리면서.
장면이 바뀌어 산책 다녀온 아이들이 그 학교 도서관인 성싶은 장소에서 책을 본다. 해설인 양 '15분 읽기'란 자막과 함께.
다음은 교실. 똑같은 아이들이 이번에는 공책에다 뭔가를 열심히 끼적이고 있었다. 담임선생이 그날 걷고 읽은 것들에 관한 글을 써 보라고 과제를 낸 모양이다. 그 중에 한 여자애가 쓴 글은 독특했다. 공책 한 페이지를 가득 메웠던데 나름 다채로웠다. 페이지 반은 산문인 감상문으로, 나머지 반은 운문인 동시로. 동시 제목은 <걸어서 뭐 하나>였다.
이른바 '15분 읽걷쓰' 이벤트가 워낙 신박해 검색을 해봤더니 주체가 학교가 아니었다. 인천교육청의 교육 정책 브랜드로 '읽기, 걷기, 쓰기'를 결합한 활동이고 읽걷쓰 플랫폼이란 온라인 공간까지 구비하고 있었다. 인천교육청이 읽걷쓰로 노린 효과는 무엇일까? 읽기와 걷기, 쓰기를 하나로 묶고 섞는 경험을 통해 중요한 삶의 문제와 질문을 탐구하는 과정에서 다양하고 역동적인 방식으로 공부하고 경험하는 교육이라고 플랫폼에서는 그 의미를 규정지었다. 이를 통해 건강한 신체, 정서, 인격을 갖춘 사람으로 거듭나는 게 종국의 목표라고도 했다. 읽고 쓰는 건 그렇다 치고 걷는 것과 나머지 활동이 무슨 연관이 있는지 궁금했다. 그것에 대해서도 친절하게 설명을 해놨다.
걷기는 읽걷쓰에서 읽기와 쓰기를 견인해주는 역할을 가지고 있어요. 직접 걸으면서 앎과 삶을 일치하게 만들어 주는 역할을 하죠. 그래서 넓게 보면 걷기는 우리가 직접 현상, 문제, 삶에 가까이 다가가 보고 듣고 느끼고 배우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어요. 걷기를 통해 사회를 온전하게 경험하고 참여할 수 있어요.(<읽걷쓰 플랫폼>에서)
요는 걷기는 경험하기와 동의어인 셈이다. 직접 보고 듣고 느끼고 배운 산경험을 세상살이에 건강하고 선하게 접목시키는 데 요긴한 질 좋은 밑절미로 거듭나게 하는 재가공 과정이 읽기와 쓰기라고 깎새는 제멋대로 받아들인다. 그러니 걷기, 읽기, 쓰기가 따로 떨어진 개별적인 활동이 아닌 통합된 배움의 경험이라 할 만하다.
기실 읽걷쓰가 일개 교육청의 기발한 발상에서 비롯된 최초의 개념은 아닐 게다. 개념화하지 않았다 뿐이지 누구나 일상에서 겪는 바라면? 깎새만 봐도 그렇다. 일상이란 쳇바퀴 속에서 긁히는 뭔가를 포착하면 그것이 무엇인지 골똘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깊이 파고든다. 그러고는 기록으로 정리한다. 게시물이란 이름으로. 거창할 것 없이 일기야말로 읽걷쓰의 전형이다. 자기성찰과 객관화를 통한 자기 성장과 발전은 예로부터 변하지 않는 일기쓰기의 구체적인 효과가 아니던가.
다만 이 모든 것을 담보하기 위해 전제되어야 할 건 꾸준함이다. 꾸준하지 않으면 일기가 아니듯 무미건조하고 천편일률적인 일상일지언정 각성의 레이더를 돌려 긁히는 무엇을 집요하게 찾아야 한다. 찾았으면 천착하고 정리한다. 이 일련의 과정이 면면히 이어진다면 어제와 다른 오늘, 오늘과 다른 내일의 나로 거듭나지 않을까. 자고로 꾸준한 사람은 못 이기는 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