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
천상병
나는 술을 좋아하되
막걸리와 맥주밖에 못 마신다
막걸리는
아침에 한 병 사면
한 홉짜리 적은 잔으로
생각날 때만 마시니 거의 하루 종일 간다
맥주는
어쩌다 원고료를 받으면
오백 원짜리 한 잔만 하는데
마누라는 몇 달에 한 번 마시는 이것도 마다한다
세상은 그런 것이 아니다
음식으로 내가 즐거움을 느끼는 때는 다만 이것뿐인데
어찌 내 한 가지뿐인 이 즐거움을 마다하려 하는가 말이다
우주도 그런 것이 아니고
세계도 그런 것이 아니고 인생도 그런 것이 아니다
목적은 다만 즐거움인 것이다 즐거움은 인생人生의 최대목표이다
막걸리는 술이 아니고 밥이나 마찬가지이다
밥일 뿐만 아니라 즐거움을 더해주는 하느님의 은총인 것이다
(주당도 아니면서 주량 자랑하던 철부지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정량을 알고 딱 그만큼만 먹는다. 아니, 그만큼만 먹을 수밖에 없다. 몸에서 안 받을 뿐더러 배가 불러서도 못 먹는다. 독한 술은 멀리하고 시인처럼 막걸리와 맥주밖에 안 마신다. 혼술하면 막걸리 1병에 5백밀리 캔맥주 하나면 딱이다. 그야말로 즐거움을 더해주는 하느님의 은총이다.
누구는 어울려 마셔야 제맛이라지만 혼자 마시면 남 눈치 안 보고 구미 당기는 안주 깔아 음미할 수 있어 편타. 거기다 혼자 마시다 보면 없던 생각까지 들기 일쑤다. 이 생각 저 궁리 하다 보면 이런 걸 두고 사색이라고 하나 보다며 괜히 우쭐해진다. 그래봐야 혼술에 궁상이겠지만.
그래도 술은 역시 막걸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