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에 감정선이 대번에 드러나는 깎새. 요 며칠 점심 때를 번번이 놓쳐 심술이 얼굴에서 떠나질 않았더랬다. 한술 막 뜨려 하면 기다렸다는 듯이 점방문에 걸린 부엉이 풍경風磬이 딸랑거려서 수저를 도로 내려놓기 일쑤였으니까. 때 맞춰 남들처럼 끼니를 갖추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하필이면 그때 오는 손님한테 야박하다고 할 수도 없다. 남들과 끼니때를 맞추는 손님은 애시당초 다른 때를 골라서 온다. 제 사정이 우선인 치들은 남이야 끼니를 때우든 말든 크게 상관하지 않는다. 그걸 미필적 고의라고 하면 적당한 표현일까. 아무튼 요 며칠 내리 끼니때만 되었다 하면 깎새는 밥 대신 똥 씹은 표정으로 손님을 이발의자에 앉히곤 했더랬다.
제때 못 찾아먹는 남편에 속이 상한 마누라는 손님한테 양해를 구해 뜨던 수저부터 서두르라고 바가지를 긁어 대지만 그건 현장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손님 혼자 덩그러니 대기석에 앉혀 놓고 밥부터 먹겠다는 심보 자체가 얹히려고 작정하는 거니까. 자고로 단사표음簞食瓢飮일지언정 정성껏 집중해서 먹어야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법이다. 밥 다 먹기를 이제나저제나 기다리는 손님 눈치를 봐가면서 정신없이 수저를 급히 놀리는 짓이야말로 고역 중에 고역이면서 자칫 병을 자초할지 모른다. 하여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도 일 때문에 끼니를 놓치는 아이러니를 도저히 용납하지 못하는 깎새의 내적 갈등이 점심 때마다 스트레스로 드러나는 것이다. 어떤 손님은 아예 '점심시간'을 30분 정도 둬 손님 양해를 구하라고 조언하던데 목하 고민 중이다. 하지만 식사 시간이다 마감 시간이다 이런저런 구실 대고 시간 빼다간 어느 세월에 장사하겠냐는 자책이 앞서 실현 가능성은 미지수다.
하다하다 동네 슈퍼에서 냉동김밥을 샀다. 한 개 값으로 두 개를 사는 1+1 상품이 아니었으면 눈길도 안 줬을 테지만 싼값에 샀다. 동네 김밥집에서도 요즘 한 줄 값이 3천 원에 육박하는데 완전 개이득이었다. 하지만 막상 점방 전자레인지를 돌려 해동시킨 김밥은 참으로 인생의 쓴맛이 아닐 수 없었다. 맛은 둘째치고 냉동시켰다 해동된 김밥은 김밥으로써 존재 가치가 많이 상실된 상태였다. 그저 목구멍으로 넘겨 때우기 급급했지 맛으로 먹는 음식이라고는. 덕분에 후다닥 한 끼 해치우긴 했으니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지만 김밥이 주는 정서적 의의 따위는 전혀 없었다. 이재무 시인이 쓴 <김밥>이란 시에 나오는 '김빠진 김밥'일밖에.
김밥
이재무
김밥은 김빠진 인생들이 먹는 밥이다.
김밥은 끼니때를 놓쳤을 때 먹는 밥이다.
김밥은 혼자 먹어도 쑥스럽지 않은 밥이다.
김밥은 서서 먹을 수 있는 밥이다.
김밥은 거울 속 시들어가는 자신의 얼굴을 힐끔힐끔 훔쳐보며 먹는 밥이다.
김밥은 핸드폰 액정 화면을 들여다보며 먹는 밥이다.
김밥은 숟가락 없이 먹는 밥이다.
김밥은 반찬 없이 먹을 수 있는 밥이다.
김밥은 컵라면과 함께 먹으면 맛이 배가 되는 밥이다.
김밥은 허겁지겁 먹을 때가 많은 밥이다.
김밥은 먹을수록 추억이 두꺼워지는 밥이다.
김밥은 천국 대신 집 한 채가 간절한 사람들이 먹는 밥이다.
먹다 보면 목이 메는 밥이다.
터널처럼 캄캄한 밥이다.
바다에서 난 생과 육지에서 나고 자란 생이 만나 찰떡궁합을 이룬 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