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결정

by 김대일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는 결정이 더 나은 결정일 수는 있어도 올바른 결정이라고 단언할 수 없다. 더 낫다는 수식에서 풍기는 현실적이면서 본능적인 이해타산이 고답적이면서 고매한 판단 기준이 개입된 올바르다라는 표현과 배치되서이겠다. 그렇다고 더 나은 결정과 올바른 결정을 옳고 그름의 관점으로 나눌 수 있느냐면 그 또한 무리일 성싶다. 앞에서도 밝혔지만 더 낫다는 데서 풍기는 인간의 본성을 거스르기란 힘들다. 매사를 도덕적이고 윤리적으로만 판단하는 것만큼 지루한 것도 없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정은 신중해야 하고 그 결정으로 인해 파급되는 후과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무조건 GO!'를 외치는 건 어쩐지 시대착오적이다. 성장이랄지 발전 가도 위를 질주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닌 시대가 요즘인 까닭이요, 혼자가 아닌 여럿이 함께 사는 삶이 올바로 사는 사는 삶의 척도가 되어 가는 시대이기 때문이 아닐까. 한 정신분석가가 분석한 인간의 결정은 좋은 참고가 될 만하다.




카를 융은 ‘인간으로 살아가는 데 있어서 궁극적인 목적은 인간이 되는 것’이라는 말을 했다. 다양한 해석과 이해의 여지가 있는 잠언이다. 더불어 어떤 인간이 될 것인가, 하는 문제도 생각해 본다. 한 사람을 어떤 인간이 되게 하는 것, 그렇게 만들어 가는 것은 무엇일까? 필자는 그것을 ‘선택’이 아닐까 짐작한다. 에리히 프롬이 말한 바와 같이, 작은 선한 결정과 행위의 결과물들이 쌓여 선한 사람을 만들고, 계속된 악한 결행들이 모여 한 사람의 삶을 악으로 구성하는 경우들을 어렵지 않게 본다. 결행이란, 결정과 더불어 박차고 일어나 행위로 옮기는 것이다. 판단이라는 사고 행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선한 결행들이 많을수록 우리는 선한 사람이 되는 것 같다.

그렇다면 도대체 선한 결행이란 무엇일까. 인간의 결정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는 생각을 한다. ‘더 나은 결정’과 ‘올바른 결정’. 그렇게 하면 더 많은 것을 가질 수 있고, 더 힘이 세질 수 있고, 더 으리으리해질 수 있다고 믿는 쪽으로 결정하는 것, 그런 원칙들이 대체로 더 나은 결정의 핵심이 된다. 하지만 더 나은 결정은 종종 불행의 시작이 된다.

올바른 결정은 인간을 고통에 빠트릴 때도 있지만 불행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더 나은 결정은 획득과 축적을 구걸하지만, 올바른 결정은 나눔과 연대를 실현한다. 나의 이득만을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생각하고, 결국 ‘당신과 나’를 선택한다. 인간의 삶을 결정하는 것은 무의식일 때도 많지만, 명징한 의식의 결심과 행위로도 선한 삶을 꾸려 나갈 수 있다. (이승욱 닛부타의숲 정신분석클리닉 대표, 2017.01.23 한겨레 칼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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