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고 하니 송년 모임한다고 여기저기서 들썩거릴 테다. 전세계를 휩쓸었던 역병의 시대를 거친 뒤로는 모임 양상이 많이 바뀌었다고는 하나 송구영신하는 마음까지 바뀌지는 않았을 터. 예전처럼 흥청망청까지는 아니더라도 조촐하게나마 한 해를 보내는 자리를 마련하는 건 별반 다르지 않을 게다. 불러준다면야 못 이기는 척 끼면 좋으련만 불비한 여건이 여간만 아니니 깎새는 올해도 지상가상없이 상을 남발하는 연말 시상식이나 TV로 보면서 한 해를 마무리할 듯싶다.
모임에 직접 가지는 않았지만 참석한 인원을 보고 깜놀했던 송년 모임이 불현듯 떠오른다. 5년 전이니까 2020년 연말 서울 어디쯤에서 조촐하게 열린 송년 모임은 수도권에 사는 대학 동문이 그날의 주인공들이었다. 남자 다섯 명에 여자 한 명이 모여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현장을 찍은 사진이 당시 동문 단톡방에서 돌자 극도의 흥분을 주체할 수 없었던 깎새!
깎새는 사진 속 홍일점인 여자동기와 그 맞은편에서 그녀와 건배하는 한 남자동기에 주목했다. 대학교 시절 한창 어울릴 무렵 남자동기는 여자동기를 외사랑했다. 외사랑이었지만 그녀도 싫지만은 않았는지 제법 잘 붙어 다녔다. 허나 그녀가 마음에 둔 사람은 정작 따로 있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그는 매우 낙담했다. 당시 그런 그를 위로해 주고 싶었지만 차마 그러질 못했다. 그녀가 좋아했던 다른 남자는 깎새와는 둘도 없이 막역했던 친구였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남자동기와 삼각관계 아닌 삼각관계로 얽힌 다른 남자 역시 사이좋게 지내던 동기였고. 그렇게 관계가 얄궂게 얽혀 있다 보니 당사자뿐만 아니라 그걸 옆에서 지켜보던 이들도 곤혹스러웠다. 둘 관계가 심상찮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나자 남자동기는 강원도 광산으로 훌쩍 떠나 버렸다. 실연 당한 남자의 슬픈 퇴장 같아 짠했다.
격조해진 지 오래되었지만 그 시절 동기들과 가끔 만나 옛추억을 떠올릴라치면 그때 삼각관계가 약방에 감초마냥 빠지질 않았었다. 철없었던 시절 해프닝으로 치부하고 말면 그뿐이겠지만 깎새는 유독 강원도 광산으로 떠나 버렸던 남자동기와 일체화를 시도하곤 했다. 말하자면 자기를 그와 동일시했던 것이다. 전후사정은 전혀 달랐지만 어차피 차인 신세로야 그나 자기나 매한가지라는 동병상련이 크게 작용했지 않았나 싶다. 그보다는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보던 진부하기 짝이 없는 클리셰, 즉 사랑했지만 떠나 보낼 수밖에 없었던 여자와 먼 훗날 재회한 남자가 느끼는 소회랄지 처신 따위가 그렇게 궁금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오죽하면 그 궁금증을 해소하는 걸 죽더라도 꼭 알고 죽어야 하는 것들 리스트에서도 윗 순위에다 올려놨을라구.
갑자기 어떤 염병할 변덕이 일었었는지 그 단톡방을 제 발로 나온 탓에 둘이 재회한 분위기 타전이랄지 둘 사이 무슨 말들이 오갔는지조차 들을 기회를 스스로 박차 버린 게 지금까지도 뼈아프다. 남자나 여자한테 '기분 어땠어?'하고 따로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실없쟁이로 낙인 찍혀 동기 명부에서 이름 파일 각오 아니면 못 할 짓이라서 관뒀다.
송년 모임이 끝난 지 한참이 흘렀는데도 별쭝난 궁금증이 도무지 가실 줄 몰랐던 깎새는 공상의 나래를 펼쳐 자기가 아예 없는 이야기를 지어내기에 이르렀다. 남자동기와 여자동기를 등장시켜 세월이 흐른 뒤에 둘이 서로를 어떻게 여기고 있는지를 깎새 제멋대로 그려 본 것이다. 다 써놓고 보니 남자동기가 주인공 역할을 담당하고 당연하게도 여자보다는 남자 시점에서 이야기가 전개되어 갔다. 아마도 그 시절 남자동기를 달래주지 못했다는 미안함이랄지 죄책감이 영향을 미쳤지 싶다.
5년 전 송년 모임 때 찍었던 사진 속 등장인물뿐만 아니라 그 시절 동문 동기들 대부분과 적조된 지 오래다. 스무 살 혈기 방장하던 시절을 함께했던 그들이 무척 그립지만 그때 그들을 고대로 소환시키기에는 이미 나이가 들어 버렸다. 나이 핑계를 대긴 하지만 설령 그들을 지금 만난다 하더라도 그때 기분이 되살아나리라는 보장이 없을 만큼 각박해진 까닭이겠다. 그러니 이 따위 말 같지 않은 이야기나 쓰면서 시시덕거릴 뿐이라.
예전에 써서 게시했던 이야기다. 살짝 고쳐 내일 다시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