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네는 마시고 나는 먹고

by 김대일

중년 동년배 둘은 깎새 점방을 거의 함께 찾았다. 다부진 풍채를 더 부각시키는 스포츠형을 선호하는 한쪽과는 달리 조막만한 머리통에 머리숱까지 헤실헤실한 다른쪽이 점방에 들어서면 '뚱뚱이와 홀쭉이'를 연상시킨다. 겉으로 봐서는 별로 어울리지 않는 두 사람이 같이 붙어다니는 까닭은 한 분야에서 오랫동안 일을 같이 해온 데다가 각자 사무실까지 엎어지면 코 닿을 데에 있어서다.

둘은 일주일에 적어도 세 번은 어울려 술잔을 기울였었다. 출출해지는 퇴근 무렵, 눈빛만 스쳐도 그길로 어깨 겯고 선술집 직행. 할 말이 뭐 그리 많아 낮에 보고 밤 늦도록 또 술잔을 기울이냐 물으면 돌아오는 대답이 싱거웠다. 그냥 습관이래나. 엇비슷한 일을 하는 처지로 통하는 애환이라는 게 한 이불 덮고 자는 마누라조차 못 알아먹는 법이라면서. 게다가 끼리끼리 어울려야 오래가는 법이라고 명토를 확 박아 버리니 더 따질 것도 없다. 벗을 쪽수로만 따지려 드는 신자본주의적 잣대가 얼마나 부질없는 짓인지 경종을 울리는 우리의 '뚱뚱이와 홀쭉이'.

그런 그들이 깎새 점방을 따로따로 찾는 일이 빈번해졌다. 더군다나 뚱뚱이는 언제부터인가 풍성하고 촘촘했던 머리털이 숭숭 빠지더니 철사 같던 머리카락조차 바스러질 듯 맥없어졌다. 갑작스런 변화에 깎새가 더 놀라 무슨 일인지 물어도 좀체 대답하지 않는 뚱뚱이의 안색엔 불안과 초조만이 득실했다.

눈에 띄는 변화가 일어나고부터 뚱뚱이가 깎새 점방을 찾는 주기는 늘어졌다. 깎을 머리가 별로 없을 뿐더러 깎더라도 딱히 작업이라고 할 게 없어서 다달이 찾던 빈도가 두어 달에 한 번 꼴로 처졌다. 그러는 사이 머리 질은 점점 더 쇠해졌고 어느 순간에 정점을 찍다가 신기하게도 원상회복이 되어 갔다. 드디어 엊그제 그가 찾았을 때는 본래 모습으로 완전히 돌아왔고 누구보다도 크게 기뻐한 깎새였다.

- 지금까지는 조심스러워 못 물어봤는데,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 간, 담도암 1기라고 건강 검진 결과가 나왔었어요. 항암 치료는 과하다고들 했지만 혹시 몰라서.

- 경과는요?

- 항암 치료는 끝났고 추적 관찰 중입니다.

원래 머리 질로 돌아온 것만 보면 나쁘지 않은 상태인 성싶었다. 문득 궁금했다.

- 금주는 필수일 텐데 친구분이 많이 섭섭하시겠어요.

- 그 친구랑 허구헌날 마신 게 화근은 아니겠지만 이제 볼장 다 본 거죠 뭐. 항암 치료 시작하면서 술 끊었어요. 그래도 여전히 같이 술집에 가긴 합니다. 친구는 마시고 나는 안주만 축내고. 습관이 무섭더라구요.

그것도 방법 중의 하나이겠다 싶었다. 둘 사이 우정을 유지시키기 위해서는.



벗이란 '제2의 나'다. 벗이 없다면 대체 누구와 더불어 보는 것을 함께 하며, 누구와 더불어 듣는 것을 함께 하며, 누구와 더불어 냄새 맡는 것을 함께 하며, 장차 누구와 더불어 지혜와 깨달음을 나눌 수 있겠는가? 아내는 잃어도 다시 구할 수 있지만 친구는 한 번 잃으면 결코 다시 구할 수 없는 법. 그것은 존재의 기반이 송두리째 무너지는 절대적 비극인 까닭이다. (연암 박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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