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고다 극장을 지나며
- 80년대의 끄트머리에서
유하
끈질기게 그 자리를 지키는구나, 파고다 극장
한땐 영화의 시절을 누린 적도 있었지
내 사춘기 동시상영의 나날들
송성문씨 수업 도중 햇살을 등에 업고 빠져나온,
썬샤인 온 마이 쇼울더, 그날의 영화들은
아무리 따라지라도 왜 그리 슬프기만 하던지
동시상영의 세상 읽기가
나를 얼마나 조로하게 했던지
쑈도 보고 영화도 보고, 막 내리면
시궁쥐 한마리 잽싸게 무대 위로 지나갔다
일어나면 매춘부처럼 내 엉덩이를 붙잡고 늘어지던
시궁쥐 색깔의 껌 한조각, 쑈의 광란과 映畵,
榮華 뒤엔 늘 불쾌한 접착력의 껌 한 쪼가리
기다린다는 걸, 그때 비 내리는 화면 보듯
희미하게 봐 버렸다, 쑈의 80년대 -
스팅 같은 트릭 영화로 다가오는 90년대 -
온갖 껌 씹는 소리들의 난무,
그 숨막히는 터널을 뚫고 오다
어느 뛰어난 시인은 아까운 나이에 영영 몸을 떠났고
난 아직도 그 거미줄 같은 껌줄기에
붙잡혀 있다 어차피 이것이 생의 몫이라면
완강히 버텨보리라, 난 천재가 아니므로
난 세상의 온갖 따라지性을 사랑하는 삼류이므로,
저 파고다 극장처럼 살아 남아, 시커먼
껌의 포충망과 씨름하며 끝끝내 필름을 돌려보리라
설령, 그것이 껌씹는 소리의 삶으로 그친다 해도
(영화를 잘 모르지만, 요즘 한국 영화를 보면 꼭 바람 빠진 풍선 같다. 실험정신이란 바람이 빠진. 새로운 돌파구를 찾으려는 노력은 보이지 않고 철저하게 자본 논리에 엮여 안주하려는 영화에 한국사람은 별로 매력을 못 느끼는 성싶다. 관객수가 현저하게 준 까닭을 거기에서 찾는다, 개인적으로.
영화다운 영화는 반드시 관객이 먼저 알아본다. 한 달만 기다리면 개봉작을 OTT로 볼 수 있다는 홀드백조차 영화다운 영화 앞에서는 거추장스럽다. 기다리자니 지레 말라 죽을 듯한 마력이 막강한 영화는 당장이라도 제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욕구를 일게 만든다. 그 마력은 거대 자본도, 유명짜한 무비스타도 담보하지 않는다. 오로지 혁신,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무엇을 갈구하는 실험정신만이 영화를 살릴 수 있다고 개인적으로 본다.
영화의 시대는 이어져야 한다. 영사기가 돌아가는 두어 시간 속에 우리가 사는 모든 것을 녹여낼 수 있고 앞으로도 무진장할 영화는 계속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