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딜레마'란 단어에 주목한다. 딜레마(dilemma)의 사전적 정의는 ‘두(di) 개의 명제(lemma)’라는 그리스어에서 비롯되었단다. 어원에서 알 수 있듯이 ‘선택해야 할 길은 두 가지 중 하나인데, 그 어느 쪽을 선택해도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가 나오게 되는 상황’이다. 가긴 가야겠는데 어느 쪽이든 낭떠리지로 떨어질 운명이라는 거다. 궁지窮地이면서 진퇴양난進退兩難이다. 하여 딜레마는 대체로 불쾌하다. 그러니 형식논리학이니 윤리학 따위 학문적으로 설명하려 들 때 극단적 가설(이를테면 <하인즈의 딜레마>처럼)을 제시해 타당한 선택을 더욱 어렵게 만들기 때문에 일상적이지 않다.
그런데도 우리는 일상에서 딜레마에 자주 직면해 일상어처럼 쓰곤 한다. 아주 곤란한 상황까지는 아니더라도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입버릇처럼 쓴다. 중국음식을 주문할 때, 짬뽕이냐 짜장면이냐 둘 중 하나를 선택하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이른바 ‘짬짜 딜레마’라고 하는. (김용석, <딜레마: 성난 황소의 두 뿔>, 한겨레신문, 2020.12.01 참고)
2019년 부산 어느 구청 소속 일자리센터에서 직업상담사로 일했던 9개월 간은 신성한 직업적 윤리와 검은 머리 짐승은 구제를 말란다는 속담이 쟁투를 벌이는 나날의 연속이었다. 당시만 해도 직업상담사에 홀딱 빠져 있어서 그 직업에 안착하기 위해 고군분투했었다. 즉 앞으로도 쭉 상담사로 벌어먹고 살 팔자라면, 그 깊이와 폭을 전혀 어림잡을 수 없는 감정을 품은 사람이라는 유기체와 부대껴야 할 직업적 운명이라면, 신실한 직업의식도 중요하지만 변덕스럽기 짝이 없는 사람들로 인해 뒤틀리고 꼬일지 모를 상담사의 연약한 밸의 맷집을 단디 키워야한다는 꿍꿍이도 목전에 놓여진 만만찮은 과제였던 것이다. '니가 나를 모르는데 난들 너를 알겠느냐'는 흘러간 유행가 가사가 마음에 그렇게 착 감길 수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너와 대면해야 하는 게 내 밥벌이라는 딜레마가 카운슬러의 숙명이었던 것이다. 상담 창구로 들이닥치는 구직자의 일거수일투족을 가늠하고 터진 입과 반신반의하는 눈초리에 온 신경을 집중해 그들의 호소에 기어이 응답해야 하는 숙명!
하지만 사람인지라 불통이란 시한폭탄을 늘 안고 산다. 요설과 침묵, 때로는 과잉된 감정의 분출에 가려진 정체불명에 당혹스러운 나머지 착오와 불신을 초래한다. 하여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이 자리가 과연 나에게 합당한 자리인지 끊임없이 회의하곤 했지. 상담자 동료는 넘쳐나는 구직자 중엔 진상 떠는 잡놈이 없을 수 없으니 일일이 신경 쓰다간 나부터 지레 미쳐버리고 말 거란 핀잔은 그래서 동업자의 진심어린 위안으로 다가오긴 했다.
그럼에도 먹고사니즘에 버거워하다 그나마 쥐고 있던 밥줄마저 끊겨 궁지에 몰리자 일자리센터까지 찾아온 구직자의 토끼 눈을 마주한 그 순간이 어쩌면 초심이라며 품었던 상담사의 윤리를 다할 그야말로 결정적 순간이라고 한다면, 속살이 썩으면 안 까진다고 해서 쓰레기통으로 집어던질 홍합탕 속 홍합으로 치부해선 안 된다. 하여 설령 진상을 부리는 시정잡배가 대기표를 들고 이열종대로 서 있다 한들 세상 모든 구직자를 잠재적인 내담자로 상정해 유익한 상담자로서 역할에 충실하는 게 진정한 소명의식임을! 아, 그렇게 9개월은 훌쩍 지나갔고 경력 단절이 우려돼 다른 일자리센터 여러 곳에 취업의 문을 두드렸건만 결국 좌절되고 말았다. 직업상담사의 딜레마에서도 자연스레 벗어나게 되었고.
딜레마를 벗어나는 방법은 당연한 말이지만, 딜레마 상황에 오래 빠져 있으면 안 되고 어느 쪽이든 빨리 결정해야 한다. 그럼 어떻게 하는 게 빠른 결정일까. 완벽한 결정은 없다는 것을 상기해야 한다. 완벽한 선택을 바라기 때문에 주어진 상황을 딜레마라고 느끼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런 욕망이 오히려 없던 딜레마도 만들어낸다. 나아가 딜레마를 설명한 철학자는 일상의 성찰을 요구한다. 딜레마가 없는 '균형 잡힌 삶'이 중요하다면서.
우리가 지금 침울한 딜레마에 빠져 있는 것은 지난 역사에서 인류가 ‘균형 잡힌 삶’을 살아오지 못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욕망이 지구 환경을 일방적으로 침탈하고, 인류의 삶과 다른 생명체의 삶 사이에 불균형이 축적되어온 결과 현재의 삶에서 균형의 가능성이 대폭 줄어든 것이다. 인간이 딜레마를 만들어온 것이다. 오늘의 딜레마는 과거 균형 없는 삶의 결과이다.
따라서 딜레마 해소의 가능성 또한 과거를 얼마나 깊이 반성하는지, 그리고 반성의 결과를 구체적 실천의 과제로 삼고 얼마나 절실히 노력하는지에 달려 있다. 미래의 딜레마 예방 역시 과거의 불균형한 삶에 대한 속죄의 정도에 달려 있다.
이는 또 다른 일상의 성찰을 요구한다. 우리는 사소한 것에서는 딜레마를 무수히 인식하면서도, 진정 균형을 잡고 살아야 했을 것에서는 딜레마가 잠재하는 상황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그 어떤 경우든 ‘인간은 딜레마를 만드는 동물’임을 깨닫게 된다. 사소한 딜레마는 만들어내고 중요한 딜레마의 가능성은 간과하면서 결국 삶을 엄중한 딜레마 속으로 몰아넣었기 때문이다.(위 칼럼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