깎새 낮술의 역사는 제법 유구하다. 일천구백구십일년도 대학 입학하면서 난생처음 술맛을 안 이래로 낮술은 최소한 깎새에게 있어서는 반항과 낭만의 상징이었다. 1교시 강의부터 땡땡이를 까고 달려간,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팍삭 주저앉을 듯이 위태롭기 짝이 없던 허름한 <108 강의실> 학사주점 늙은 여주인을 꼬셔서 어제 팔다 남은 오뎅탕에 막걸리를 내오게 해서는 동녘에 뜬 해가 서녘으로 질 때까지 퍼마시던 치기를 권위주의적이고 고압적이던 당시 사회 분위기에 경종을 울리는, 마치 풍차를 향해 돌진하는 돈키호테처럼 강력한 의지의 표명인 양 착각했던 것이다. 그 결기를 학구열로 승화시켰다면 다른 운명을 걸었을지 모르겠으나 대학 시절 내내 반항과 낭만을 빙자한 낮술 삼매경에서 헤어 나오질 못한 까닭에 주도酒道로 인이 박여 지금에 이르고야 말았다.
그 변형 불가인 술 유전자가 온몸을 싸돌아다니는 통에 행여 누군가 대낮에 대작을 청하기라도 하면 뒤도 안 돌아보고 술자리 방석을 끼고 앉기 마련이겠으나 제 부모도 몰라본다는 낮술을 기울일 만큼 한가한 처지의 지인들이 드문 요즘에는 점방 쉬는 화요일 혼자 집에서 막걸리 쭉쭉 빨면서 헤묵은 추억이나 되씹기 일쑤였다.
하지만 그마저도 올해 들어 금지되고 말았으니, 대학원 진학을 앞둔 큰딸이 쉬는 화요일만 되었다 하면 퍼질러 막걸리통이나 흔들어재끼는 아비 꼬라지가 영 거슬렸는지 낮술 금지를 선포한데다 역시 대학 진학을 앞둔 막내딸까지 합세해 두 눈 시퍼렇게 감시하는 통에 입맛만 다시다 만다. 따뜻한 봄바람 불어 딸내미들 학교를 다닙네 어쩌네 본격적으로 집구석에 있을 새가 없기 전까지는 별수없게 되었다. 다만, 홀가분한 걸로만 따지면 쉬는 화요일은 쨉도 안 되는 월요일 저녁 가끔 아빠와 술추렴해줄 수 있다는 무마 공작에 홀딱 넘어가 아쉬운 마음 슬그머니 접는다. 사람이 이리 가벼워서야 쓰겠냐마는.
이 방 저 방 좋아도 내 서방이 젤 좋고 이 집 저 집 좋아도 내 계집이 젤 좋듯이 이 술 저 술 해도 그래도 낮술이 나는 젤 좋던데, 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