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e's looking at you, kid
마스크를 쓰고 다니니 사람을 알아보기 어렵다는 고충을 곧잘 듣는다. 단골 손님을 바로 알아채지 못해 어쩔 줄 몰라 하는 아버지 모습을 가게에 드나들면서 심심찮게 본다. 남의 머리 깎아주는 가게건 남의 배를 채워주는 가게건 어떤 가게가 됐건 간에 뜨내기 손님보다 진득하게 자주 찾아와 팔아주고 가는 단골 손님이 우선이다. 그 단골을 위해 다른 어떤 손님들보다 더 친밀하고 깍듯하게 대하는 건 물론이고 거치적거려 행여 그가 불편함을 느낄 모든 것들을 미연에 차단하는 게 주인장 행동강령 최우선 순위임이 분명 하거늘 감히 하늘 같은 단골을 못 알아보는 결례를 범했다면 가게를 꾸릴 자격이 사실 없다. 일 년이 넘도록 마스크 쓰기가 일상이 되어버린 역병의 시대를 핑곗거리로 들이댈 순 있어도 어쩐지 궁색하다(아버지, 때론 호된 질책이 보약보다 용할 수 있으니 노여워 마시길).
그런 의미에서 나는, 꼭 나만의 비상한 능력이라고 할 순 없지만, 마스크 위로 굴러가는 두 눈동자만 보고도 누가 누군지 알 수 있다. 물론 생면부지인 사이라면 그가 누군지 절대 알 수가 없지만 일전에 안면을 트고 두어 번 말이라도 붙여본 자라면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그 입술은 내 가슴에 있'기 마련이다. 즉 한 달에 한 번 혈압 약을 처방 받으러 들르는 동네병원 원장과 간호사, 약을 타는 약국 약사를 우리 동네가 아닌 동네 길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친다손 그들에게 다음 달 언제 약을 타러 가야 하는지 나는 바로 물어볼 수 있다. 설령 마스크로 얼굴 절반을 싸매고 있을지언정. 그건 비록 한 달의 한 번밖에 그들을 만나지 못하더라도 나는 이미 그들의 덩치, 머리 스타일, 그들의 걸음걸이를 통해 그들이 누구인지 단박에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인상적인 겉모습 한두 가지로도 그 사람과 나의 관계를 복기할 수 있다는 소리다. 꽤 영특하지? 특히 상대의 두 눈을 보는 것만으로도, 우연히 마주쳐서 서로를 불쑥 쳐다보는 상대의 두 눈동자를 응시하는 그 짧은 순간에도 그가 맛은 참 있는데 소불고기 만 원어치 무게를 달아 만 오백 원이 나오면 오백 원을 더 붙여 기어이 만 천 원으로 팔고 마는 덤이 야박한 우리 아파트 상가 정육점 주인이고 그녀가 순대 섞어 달랬더니 허파고 간이고 각각 세 조각만 썰어 그걸 다시 반으로 써는 인색의 신기를 시전하는 역시 상가 분식점 여주인임을 금세 알아챈다. 알아챌 뿐만 아니라 '내가 당신한테 그간 섭섭했던 게 한두 가지가 아니야'라는 무언의 레이저 광선을 쏘면 그토록 형형하던 그(녀)의 광채가 잦아들더니 회개하듯 고개를 숙이는 통쾌한 장면도 심심찮게 연출한다. 이후로 오백 원어치 덤은커녕 오백 원을 더 보태 계산하는 게 다반사가 되고 포장이 터질 것 같다며 기왕에 썰어 놓은 순대 꽁다리 두 쪽을 덜어내도 끽소리 제대로 한번 못하지만.
히가시노 게이고 단편 중 「그대 눈동자에 건배」에는 나만큼, 아니 나보다 더 사람을 잘 알아채는 인물이 등장한다. 나야 알 만한 사람만 알아채는 능력 같지도 않은 잔재주이지만 미아타리(불시 발견)는 그 잔재주가 수사 기법으로 도입된 사례라 할 수 있다. 일본 도쿄 경시청 미아타리 수사원들은 수배자 수백 명의 인상착의를 암기한다. 주목하는 부분은 수배자들의 눈매란다. 세월이 흐르거나 성형수술을 해도 얼굴의 골격이나 눈, 코 라인 특징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 한다. 번화가나 전철역 앞에 무작정 서서 기억력과 두 눈만으로 지명수배자를 찾아낸다. 사막에서 바늘 찾기라지만 성과가 꽤 있나 보더라(한국일보, 20170514 기사 참조).
우치무라는 동창인 야나기다의 초대에 응해 나간 미팅 자리에서 모델치고 키는 작지만 눈가의 화장이 인상적인 모모카를 알게 된다. 검은 눈동자에 갈색이 서리고 눈동자가 한층 크게 보이는 컬러 콘택트렌즈를 낀 모모카. 각자의 관심사가 에니메이션 시청이라는 걸 알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교제를 이어가지만 이상하게도 모모카는 통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걸 꺼린다. 집에 데려다 준대도 사양하고 고향 얘기를 물어보면 화제를 바꾸며 적극적으로 자기를 방어했다. 단단히 마음을 먹은 우치무라가 하루는 무조건 집에 데려다 주겠다고 하면서 모모카에게 좋아한다고 고백한다. 그러자 모모카는 자기를 에니메이션의 주인공으로 착각한 것 같다면서 그 환상을 깨게 해준답시고 콘택트렌즈를 뺀다. '그래도 날 사랑해?' 묻듯. 렌즈를 벗은 모모카를 우두커니 바라보던 우치무라는,
- 너는… 내가 오랫동안 찾던 사람이야.(『그대 눈동자에 건배』(양윤옥 옮김, 현대문학, 2017)에서)
곧바로 그녀를 체포한다.
표제 제목이기도 한 '그대 눈동자에 건배'는 영화 카사블랑카의 명대사 중 하나란다. 최근에 나는 그 대사에 꼭 맞는, 대사 그대로를 말하고(그것도 원어로) 대사 그대로를 행동에 옮긴 드라마의 한 장면을 여러 수십 번 보고 또 보고 돌려봤다(유투브로 그 장면만. 고로 드라마를 다 본 게 아니니 드라마 전체 내용을 알 리 없다). 옛날 영화 대사를 이렇듯 절묘하게 활용한 사례를 나로서는 여태껏 본 적이 없고 그래서 사람 마음을 마구 뒤흔들어 놓았는지도 모르겠다.
제목이 「멜로가 체질」이랬던가. 세 여주인공 중 은정(전여빈 분)은 옛 애인의 허깨비하고 먹고 놀고 얘기한다. 구구절절한 사연이 있나 본데 계속 말하지만 드라마를 처음부터 보지 않아 잘 모르니 설명은 생략하고, 하여튼 촬영장에서 티격태격하던 잘 나가는 CF감독이면서 은정처럼 전 재산을 기부해 기부계의 양대산맥, 기부계의 두 또라이 중 한 사람인 상수(손석구 분)와 은정이 술자리를 가지는 장면. 상수는 여태 말하지 않았던 서로의 얘기나 하자고 제안한다. 그러고 드라마 수록곡인 <흔들리는 꽃들 속에서 네 샴푸 향이 느껴진거야>만 들리고 디졸브. 음성은 들리지 않지만 얘기를 하는 은정이나 그 얘기를 진지하게 듣고 있는 상수의 표정으로 미루어 보건대 은정이 옛 애인의 허깨비와 지낼 수밖에 없었던 사연을 털어놓고 이해하려는 것 같았다. 배경음악이 그치고 장면이 전환되자 상수는 은정의 잔에 소주를 따르고 자신의 잔에도 따른다. 그리고 잔을 들면서 말한다.
- here's looking at you, kid.
의아해하는 은정을 보면서 덧붙인다.
- 카사블랑카에 나온 대사야. 우리나라에서 참 멋지게 번역됐지. 당신의 눈에 뭐가 보이든… 난… 당신의 눈동자에 건배.
잔을 드는 상수. 맞춰 줘야 하니까 은정도 짠이나 하려고 잔을 든다. 상수는 그 잔을 지나쳐 은정의 눈에 잔을 가져다 댄다.
수배자의 인상착의(특히 눈매)를 기억해뒀다가 체포하는 우치무라나 무엇을 보건 이해하겠노라며 은정의 눈동자에 건배를 하는 상수나 두 눈을 통해 상대를 알아챘다. 다른 데는 몰라도 눈은 거짓말을 하지 않나 보다.
마스크가 필수품인 시대, 가끔은 마스크 속에 감춰진 사람들의 인중 아래를 훔쳐 보고 싶은 욕구가 일곤 하지만 빼꼼히 나를 쳐다보는 사람의 두 눈만으로 그 사람의 얼굴, 목소리, 그 성격까지 상상하는 재미도 썩 나쁘진 않다. 그래도 마스크를 벗은 맨 얼굴을 맞대고 서로의 두 눈을 지긋이 바라보며 조곤조곤 얘기를 나누는 기쁨보다는 비교도 안 된다. 그런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