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랍 초부터 인근 공원 리모델링 공사가 한창이다. 아침저녁으로 전철역을 오갈 때 꼭 지나치는 공원은 고즈넉했는데 4개월가량 소요될 거란 안내를 사전에 들었음에도 공사 인부와 공사 자재, 공사 차량으로 북적대는 풍경이 낯설면서 마뜩잖다.
공사를 시작한 지 얼마 안 가 공원길에 붙박여 섰던 십수 미터 키는 족히 되는 아름드리나무들이 잘렸다. 처음 공원이 생기면서부터, 어쩌면 해운대 신시가지가 조성될 즈음부터 터를 잡고 거기서 버티고 서 있었을 나무들이었다. 가지가 크고 잎사귀는 넓어 한여름 무더위를 피할 그늘로는 그만이었다. 단풍잎 지는 계절이 오면 땅바닥에 쌓인 잎사귀 처치가 참 곤란하겠구나 싶다가도 삭막한 아스팔트길을 슬며시 덮어 주는 한 떨기 낭만으로 그만한 게 또 어디 있겠냐 했다. 어린 시절 동네에 하늘로 솟구쳐 올랐던 플라타너스 나무들이 자꾸 떠올라 가던 길 멈추고 나무들을 멍하니 쳐다보곤 했었다.
높다란 가지 위로 까치집을 하나같이 이고 있었던 나무들이었다. 아파트 단지들 사이에서 섬처럼 덩그러니 떠 있는 공원, 그나마 새들은 유일한 안식처로 나무들에 의지했을지 모른다. 나무가 베어지면서 까치집도 따라 무너졌을 게다. 평온하던 일상이 삽시간에 깔아뭉개진 까치들. 그러고 보니 아침이면 귀가 따갑게 짖어대던 까치 소리가 사라졌다.
누군가가 항의 민원을 넣었던가 보다. 공사업체가 해명 현수막을 내걸었다.
<○○공원 버즘나무 및 히말라야시다 제거사유>
- 버즘나무: 수명이 오래되어 나무에 구멍이 발생되고 강풍, 태풍에 취약하여 주민 안전을 위한 벌목
- 히말라야시다: 뿌리가 땅 속에 깊이 뻗어있지 않아 강풍, 태풍에 취약하여 주민 안전을 위한 벌목
버즘나무, 히말라야시다를 처음 심었을 때 나중에 이럴 거라고 예상을 못했을까. 예상을 못했다면 조경사(혹은 담당 공무원)가 바보 천치였거나 알고도 그냥 심었다면 직무 유기로 중징계감이다. 그보다 여기서 제법 오래 산 사람으로서는 해명이라고 내놓은 사유가 선뜻 용납하기 어렵게 의아했다. 이십 년 넘게 살면서 아파트 건물이 휘청거릴 정도로 공포스럽기 짝이 없던 '매미'다 뭐다 짝자그르한 태풍을 여러 수십 개를 겪었지만 그 나무들 때문에 사람들이 다친 경우를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 태풍이 닥치면 공원엔 사람도 새도 뭣도 다 사라진다. 설령 강풍이 불어 도저히 제 몸을 가누지 못해 가지가 부러진들 그건 나무들 스스로 살아남기 위한 본능적 몸부림이지 사람들을 상하게 할 위해가 아니다.
큰 도로를 사이에 두고 아래쪽에 있는 공원을 위쪽에 사는 내가 일부러 들르는 일은 드물다. 아이들이 공원에서 놀 나이가 지나서는 더하다. 그저 전철 역 갈 때 스쳐 지나가는 권태로운 일상의 한 조각일 뿐. 하지만 한 곳에서 이십 년을 정주하면 신박함 대신 익숙함이 더 푸근하다. 늘 거기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안심이 되고 위안을 받는, 말하지 않아도 다 알 듯한 아주 오래된 친구 같은. 대대적인 리모델링 전에 내가 기억하기로 부분적인 개보수가 한 번 있었다. 공원 일부를 그리스의 원형 극장처럼 만들었다. 영화 상영, 무대 공연 따위 개최로 공원 활용을 높이려는 목적이었겠는데 제법 효과를 본 것도 같다. 아이들이 뛰어다니고 노는 평평한 공간 일부를 계단식 관람석으로 만들어 어른들 놀이터로 바꿔 놓은 게 잘 한 짓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나마 공원을 확 파헤치는 해코지는 다행히 없었다.
대학 시절, 건축가 김중업 선생의 작품인 인문관 앞에, 그러니까 학교 정문에서 완만하게 잠깐 올라가다 보면 드넓은 벌판 같은 운동장이 펼쳐져 있었다. 대운동장(공식 명칭인지는 잘 모르겠다)이라고 불렸지만 우리는 '넉넉한 터', 줄여서 '넉터'라고 불렀다. 연행길에 올랐던 연암이 요동벌을 상면하면서 좋은 울음터로 가히 한 번 울 만하다고 감탄(호곡장론好哭場論)한 것처럼 그때 우리도 넉터에서 자주 목 놓아 크게 울었다.
쪽수로 밀어붙이는 공과대생 체육대회도 거뜬히 수용할 만큼 배포가 컸던 넉터였다. 그러고도 다른 한 쪽에선 저녁 술 내기 축구 시합이 벌어졌고 또 다른 한 쪽에선 시국 연설에 데모 출정식이 한창이었다. 자투리 구석이 더 남았는지 두주불사 팀들이 여기저기에서 술판을 벌이며 알량한 청춘 예찬을 늘어놓기도 했다. 즐거워서 울고 웃겨서 울고 슬퍼서 울고 성나서 울고 어머니 품처럼 포근해서 울고 한없이 넓어서 울고. 그런 넉터의 반을 뚝 잘라 땅을 파헤치더니 대학본부라는 건물을 세웠다. 반토막이 나 반신불수가 된 넉터는 다시 쪼개져서 반반하게 포장이 잘 된 농구 코트로 꾸며졌다. 가끔 캠퍼스를 들러 토막의 토막이 난 넉터를 볼 때면 화상으로 생긴 딱딱하게 번들거리는 흉터 자국이 자꾸 연상돼 불편했다.
공원이란 공간엔 사람만 있지 않다. 개도 있고 고양이도 있으며 참새, 까치 따위 새들도 있다. 공원을 아늑하게 감싸 안은 나무들과 꽃들도 역시 모두와 공생한다. 인공이란 조미료가 첨가되긴 했어도 공원은 작은 자연이다. 사람들은 그 자연 속을 유영하며 잠깐의 안식을 얻고 간다. 모르긴 몰라도 공원을 조성하는 의미가 거기에 있지 않을까 싶다. 낡고 구려서 산뜻하게 바꾸겠다는 데 트집 잡으려는 건 아니다. 다만 일고의 죄책감도 없이 자연을 이루는 구성원의 목을 베면서까지 얼마나 더 좋은 자연을 구현해 내겠다는 건지 나로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게 문제지. 신시가지가 조성될 즈음 조경했다면 삼십 년도 넘었을 수목들이었다. 그 삼십 년 세월 속에서 그 나무들이 우리에게 준 것은 그저 관상觀賞만은 아닐 것이다. 그 나무들의 존재 가치를 새삼 느끼자고 또 삼십 년을 기다려야 할까. 아니, 이상하리만치 새 것만을 추구하려는 우리의 악 기호로 봐서는 삼십 년은커녕 나무의 뿌리가 채 박히기도 전에 이른바 주민 안전을 위한 나무를 심으려고 또 베어질지 모른다. 해명 현수막이야 또 걸면 될 테고.
어릴 적 플라타너스 나무가 그립다. 드넓은 넉터가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