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의 드네프르 강 언덕의 전승기념탑. 2차대전 때 수많은 희생을 치르면서 독일의 침략을 물리친 전승을 기념하는 탑. 나는 그것이 기념탑인 줄도 몰랐습니다. 왜냐하면 언덕에 서 있는 여인상이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생각하는 전승기념탑과는 너무도 다른 모양이었기 때문이었지요.
의아해하는 나에게 안내자의 설명이 참으로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습니다. 전승이란 전쟁에 나간 아들이 집으로 돌아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며 집으로 돌아오는 아들이 가장 잘 보이는 언덕에 어머니가 서서 기다리는 것, 그것만큼 전승의 의미를 감동적으로 나타내는 것이 있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전승기념탐이라고 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이 워싱턴에 있는 전승기념탑이었습니다 … 전쟁에 대하여 지금까지 내가 가지고 있던 생각의 천박함을 드러내었던 것입니다. 전승은 적군을 공격하여 진지를 탈환하거나 점령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었던 나 자신의 생각이 부끄러웠던 것이지요. 미국적 사고와 문화가 우리의 심성을 압도적으로 장악하고 있는 현실을 깨달아야 했습니다. (신영복,《더불어숲》에서)
내 바람은 단 하나다. 항전 의지를 굽히지 않고 마침내 승리를 거머쥔 자들이 드네프르 강 언덕 전승기념탑에서 다시 한번 무사 귀환과 재회의 뜨거운 포옹이 이뤄지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