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대일 Mar 01. 2022

그 노래 그 사람

   백설희의 <봄날은 간다>란 노래는 묘하다. 노래가 청승맞기 짝이 없는데 사람 애간장을 어지간히 녹여야 말이지. 구슬픈 멜로디에 잊지 못할 사연까지 장착하면 노래는 더 이상 노래가 아닌 한 편의 서사시로 거듭난다. 

   엊그제 <불후의 명곡>이란 TV 프로그램은 장사익의 스페셜 무대였다. 장사익이 부른 <봄날은 간다>는 원곡을 뛰어넘는 청출어람의 절창으로 손꼽힌다. 장사익은 이날 최백호를 초대해 <봄날은 간다>를 듀엣으로 불렀다. 우수에 젖은 최백호의 음색이 탁월한 배경음으로 깔려 장사익이 내지르듯 억센 창법을 완벽하게 견인해 청승의 극한까지 치닫는 양 듣는 이의 마음을 후벼팠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서로를 선생님이라 존칭하는 두 노가객과 동시대를 함께할 수 있는 건 나의, 우리의 큰 축복이다.

   <봄날은 간다>란 노래에 얽힌 내 사연은 어쩌면 그리 흥미로운 게 아닐지 모르겠다. 비록 잠깐 스친 인연일 뿐이라 절하한다 해도 내 인생 역정에 깊게 각인된 인상만은 세월이 흐를수록 더 깊이 패였으면 패였지 잊혀질 리 없다. 하여 두 노가객이 부른 <봄날은 간다>에 더 몰입하다 그만 눈시울이 붉어지고 만다. 그 사연을 한 8년 전에 글로 자분자분 남겨 놓았었다. 오늘은 그때 썼던 글을 옮기는 걸로 끝맺기로 한다.

​   

   가슴에 사연 하나쯤 품고 술잔 기울이는 손님들을 바라보자니 미처 가누지 못한 감정이 온맘을 휘감아 버렸다. 하여 생면부지 그들이 토로하는 과거의 희로애락이 마치 내 일인 양 생생하여 아예 터놓고 수작을 부리고픈 오지랖에는 대책이 없다. 그들이 얘기하는 그때 거기에 나 또한 서려 있었으니 아련한 향수를 마침내 소환하고야 만다. 안 그래도 순정덩어리인 맞은편 《아!그○》이모는 무에 그리 울적한지 엊그제 밤에는 라디오 스피커로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노래 자락에 기대 사슴 같이 깊은 눈망울에 눈물이 한가득 고였고 나는 나 대로 귀에 익은 가락에 잠시 회상에 잠겼더랬다. 그 분은 지금 어디서 무얼 하시는지, 흥에 겨우면 여전히 이 노래를 부르시는지, 자취는 사라졌건만 노래는 생생하다.

   보수동 책방골목에서 국제시장 방향으로 조금 걷다가 시장 여러 블록 중에 이른바 '다찌집'이라 불리는 선술집들이 빼곡히 밀집한 골목이 있다. 거기에 들어서면 기중《함○집》이 그때는 있었다. '다찌집'은 술만 주문하면 안주가 자동 따라 나오는 공통된 특색이 재미진데 나오는 안줏거리가 심상찮다. 기본 안주라며 나오는 생선구이, 각종 해산물, 파전, 튀김 따위가 안주값을 따로 줘도 전혀 아깝지 않을 성찬이니 말이다. 애주가 입장에서야 안주값 걱정 안 들고 누리는 호사니 오죽할까. 5년 전 이맘때쯤 아무개 선생은 나를 거기로 안내했다.

   ​그 분 제자 중 외국계 보험회사 지점장은 은퇴한 은사를 위해 제 사무실 한 켠에 그 분을 위한 공간을 조붓하게나마 따로 만들어 두고는 보험에 입문한 신입 설계사들 정신교육을 담당하는 소위 카운셀러 역할을 소일거리 삼아 부담없이 맡겼다. 정신교육이라지만 그 내용이라는 게 은퇴 교사가 겪어온 인생 역정이 대부분이었고 눌변에 좌중을 압도할 수완도 별로여서 재미랄 게 실은 없었다. 그럼에도 특이했던 건, 한 기수 교육이 끝나면 어김없이 선생은 뭔가를 주섬주섬 꺼내 교육에 참석한 사람들을 일일이 호명하며 나눠줬는데 그건 대리석 같은 돌을 네모반듯하게 깍아 만든 도장이었다. 새롭게 들어온 설계사들의 명단을 미리 구해 한 사람도 빠짐없이 그들 이름을 새긴 도장을 직접 만드는 작업을 선생은 늘 해왔던 것이다. 일면식도 없는 타인에게서 내 이름자 새긴 도장을 선물받는 기분은 참으로 묘했고 그런 그 분의 면면이 몹시 궁금해졌다.

   ​얼마 뒤 막무가내로 찾아뵈었는데 의외였는지 놀라는 눈치였다. 선생이 행하는 교육이라는 게 의례적인데다 일종의 연출된 퍼포먼스로 신입 설계사의 영업 마인드를 고취시키려는 보험회사의 그렇고 그런 이벤트 중 하나일 뿐이니 제 이름자 박힌 도장을 거저얻은들 그것에 큰 의미를 두거나 감동을 받는 설계사를 여지껏 본 적이 없었으니 참 별종이다 싶었다나. 상기된 마음으로 사무실 한 켠에 자리잡은 그 분 방엘 들어가니 나로서는 놀랍고 황홀한 광경이 펼쳐졌다. 서너 평이나 될까 말까 한 좁은 직사각형 공간의 세 면은 책으로 꽉 채워져 있었고 턴테이블과 스피커, LP들이 나머지 한 면에 고풍스럽게 자리를 잡고 있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방 한가운데에는 조각彫刻을 위한 작업대와 캔버스가 나란히 제 주인의 남은 작업을 기다리는 듯했고 햇살 빼꼼히 비치는 창가엔 난蘭들이 그 자태를 은은하게 뽐내는 듯했다. 불쑥 들이닥친 불청객을 대접하려고 급히 내어놓은 커피는 그때껏 마셨던 그 어떤 차보다 나를 감동시켰다. 선생과 그 날 그 방에서 무슨 말이 오갔는지는 전혀 기억이 없지만 어쨌든 나는 행복감으로 완전히 도취되었고 후마니타스적인 선생의 모습에 매료되었음엔 틀림없다. 다시 뵙기를 청하자 선생은 국제시장 모처에서 보자셨고 그렇게 며칠이 지난 뒤 재회한 곳이 《함○집》이었다.

   ​말씀은 소탈하셨음에도 깊은 연륜과 기풍이 묻어 나왔다. 맥주를 드시면서 유난히 오늘은 기분이 좋다며 이 인연이 오래도록 계속 이어지길 바란다고 진심으로 바라셨다. 그러다 흥에 겨웠는지 가게 늙은 여주인에게, "이 곳을 뻔질나게 다녔지만 오늘처럼 특별하긴 처음이우. 주인장, 내 실례가 안 되는 선에서 한 곡조 뽑을라는데 괜찮겠수?" 하며 잔잔하게 부르던 노래가〈봄날은 간다〉였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새파란 풀잎이 물에 떠서 흘러가더라/오늘도 꽃편지 내던지며/청노새 짤랑대는 역마차 길에/별이 뜨면 서로 웃고 별이 지면 서로 울던/실없는 그 기약에 봄날은 간다

   구슬픈 가락에 얹힌 애틋한 가사가 듣는 이의 심금을 울렸다. 봄날은 필시 사랑으로 생동하는 청춘임에 틀림없으나 어느덧 덧없이 사라지고 말아서 되씹자니 청승맞은 눈물만 하염없다. 노래를 듣거나 부르면 마음이 짠해진다는 선생은 정작 그 뒷사연은 말을 아끼셨으나 어림짐작할 만하다. 나 또한 소싯적 겪었던 실연이었으니까.

   ​그 뒤로 두어 차례 더 찾아뵈면서 특히 문학, 예술, 철학 방면의 남다른 안목을 접하는 행운을 누렸고 특히 선생은 내게 선물로 한시漢詩 입문서 한 권을 주시면서 그 방면의 길을 터주셨는데 그때 그 책은 여전히 서재 한 귀퉁이에 꽂혀 있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일 년 만에 그 보험회사를 부랴부랴 관둔 뒤로는 선생과 교류도 끊겼다. 실 한 오라기같이 가냘펐을지라도 인연의 끈만은 기어이 잡았어야 했다. 먹고사니즘에 허겁지겁댈갑세 인연까지 내팽개쳐서는 안 되었다. 교우란 것도 살 만할 때라야 누려 봄직한 허례 정도로만 여기는 치기가 단작스럽다. 만약 그때 소견머리만 똑바로 들었다면 여전히 선생과 《함○집》구석진 테이블에서 맥주잔을 기울이며 선생이 부르는 <봄날은 간다>에 코러스를 넣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일신의 안위에만 정신이 팔려 실다운 지인 한 명 만나기가 갈수록 어려울 수밖에 없는 요즘 그때를 떠올리면 마음이 저린다. 덧없이 나이는 먹어가는데 한 잔 술에 흉금 터놓을 지인 한 사람 변변찮은 깜냥을 지난날의 업보가 아니면 뭘로 설명할 수 있을지.

   ​사람이 그리우면 늙는 거라는 우스개소리가 처연하게 들린다. 그리운 사람 차곡차곡 만나고 싶은 요즘이다. 오늘따라 광안대교는 무심히도 휘황찬란하구나.(2014. 06.)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