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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일 Mar 02. 2022

일단 부딪혀 보자

   그제인 2/28 임대차계약을 맺었다. 3/1이 공휴일인 관계로 내부 인테리어 공사는 오늘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대신 어제는 부친과 가게에 들어갈 가전제품과 가구, 이용기구, 개업 선물 따위를 주문하고 예약하느라 종일 동분서주했다. 부친은 늦어도 3월 둘째주까지는 내부 설비는 물론 집기 비품을 완비한 후 곧장 영업에 돌입하겠다는 심산이다. 가게 주인이긴 해도 신출내기에 어중잽이인 나로서는 오랜 내공에서 빚어지는 부친의 저돌적인 속전속결에 순순히 따를 수밖에 없다.

   내 가게니 내 선에서 내 개성을 살려 뭔가를 그럴듯하게 꾸며보겠다는 생각은 애시당초 접었다. 가게 이름도 차별화되고 개성이 넘치는 무엇을 궁리하다가 주고객층인 중장년을 감안한다면 쉬우면서 무던하게 지어야 인지도를 높일 수 있다는 부친의 의견을 좇아 가게가 위치한 동네의 행정구역명을 빌어 <개금남성커트점>으로 낙착을 봤다. 하기사 겉치레만 요란할 뿐 오라는 손님 대신 파리만 날리면 그게 빛 좋은 개살구 꼴이지 달리 뭐겠는가. 모든 것을 실속있게 다뤄야 한다는 것, 부친 옆에서 새삼 배우는 삶의 지혜다.

   다 좋은데, 종국에는 부친의 의견을 따르기로 했지만, 하나만은 불만이 남는다. 근무시간이다. 가게 근처에 산책하기 좋은 큰 공원이 있어 특히 새벽에서 아침으로 이어지는 시간대 노인층의 이동이 잦으니 가게를 일찍 여는 게 어떻냐는 당부는 충분히 일리가 있다. 시내버스 한 코스 거리에 위치해 동선이 겹치는 부친 가게로 보자면 새벽 6시면 가게 문을 활짝 열어놓고 아침 손님을 받은 지 십수 년째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아먹는 건 알겠지만 아침 8시부터 저녁 7시30분까지로 영업시간을 잡은 건 시작도 하기 전부터 어째 좀 벅차다. 전철로 출퇴근 한다 해도 집에서 가게까지 한 시간, 왕복 두 시간은 넘어 걸릴 텐데 하루 중 잠자는 시간 빼고는 나를 위한 시간이랄 게 거의 없다면 인생을 즐기기 위해 일하는 거지 일하려고 인생을 쏟아붓진 않겠노라고 한 내 신조와는 완전히 어긋나는 셈이다. 이곳에서 뼈를 묻는다는 각오로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덤벼들어도 밥숟갈 겨우 뜰까 말까 하다는 부친의 엄포가 매일매일을 투쟁적으로 임한 당신의 산경험에서 비롯되었음을 모르는 바 아니고 일천한 나로서는 노련한 선배가 밟아온 길을 답습하는 것만큼 안전한 길이 없음을 또한 잘 알면서도, 인생 자체가 미적지근한 내 입장에서는 '일'을 우승열패라는 냉엄한 현실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쟁투로만 규정짓는 태도에는 좀처럼 녹아들기가 쉽지 않다. 기껏 투정을 부리듯 어깃장을 놓은 게 '7시 퇴근'이었지만 그마저도 30분 상간에 하루 매출이 얼만데라는 지극히 경험론적 반론에 부딪쳐 좌절되고 만다.

   먼저 겪어본 사람보다 무서운 사람은 없다. 부친만큼 생생하게 나를 각성시키는 이가 또 없다. 하여 가게 운영과 관련해 더는 내 주장을 고집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부친의 방침을 그대로 좇아 내 것으로 소화시킨 후 나만의 새로운 방침으로 리뉴얼하는 길을 택하기로 했다. 당면한 과제는 일단 부딪혀 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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