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하고 싶다는 모친을 휠체어에 태워 투표장으로 향했다. 투표장은 본가 인근 초등학교로 성인 걸음으로 3~4분 걸리는 거리였다. 픽업하는 주간보호센터 직원이 오기 전에 투표를 끝내야 해서 투표장 문이 열리는 아침 6시에 맞추려고 서둘렀다.
휠체어를 밀면서 어둠에 어슴푸레 잠긴 주변을 살폈다. 학교 주변 인도는 그 폭이 협소했고 보도블럭 상태는 들쭉날쭉 불량했다. 그조차도 인도변에 어지럽게 널려 있는 장애물들로 휠체어를 혼자 몰기에는 불편하기 짝이 없는 지경이었다. 차라리 휠체어를 차도로 진출시켜 이동하는 게 더 용이했다. 이른 아침이어서 망정이지 차량 이동이 잦은 때는 위험을 감수해야만 한다. 보호자가 동행하지 않으면 외출 자체가 어렵겠다는 결론을 휠체어를 밀면서 내렸다.
투표장은 급식실과 도서관으로 나뉘었는데 모친이 가야 할 곳은 1층 도서관이었다. 진행요원 안내를 받아 투표장으로 들어가려는데 10cm가 넘어 보이는 높은 턱이 가로막고 있었다. 진행요원에게 부탁해 같이 휠체어를 들어올려서야 입장했고 나갈 때도 마찬가지였다.
휠체어가 아니면 거동이 힘든 모친을 돌보면서 몸이 불편한 사람을 더 불편하게 만드는 것들에 대해 자연스럽게 눈이 갔다. 최근 버스회사가 휠체어 탑승설비를 마련하지 않은 것은 장애인차별금지법상 차별행위지만 모든 노선이 아니라 차별구제 소송을 낸 장애인들이 주로 이용하는 노선 위주로 휠체어 탑승 설비를 설치하라는 대법원 판결에 대해서 가고 싶은 곳이 생길 때마다 매번 장애인 개인이 소송으로 해결하란 것인지 의문이라며 차별구제 범위를 소송 당사자의 문제로 제한한 퇴행적 판결이라는 장애인 단체의 비판에 크게 공감한다. 휠체어를 타고서 집앞도 제 뜻대로 나다니지 못할 판인데 하물며 더 먼 곳은 오죽할까.
기준을 어디에다 두느냐에 따라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이 이타적일 수도 이기적일 수도 있겠다. 모든 사안을 정상인 위주로만 고려한다면 장애인들은 당연히 소외될 수밖에 없다. 우리가 편협해지지 않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서 그들과 똑같은 형편에서 겪어보는 거라고 요즘 나는 체감한다. 휠체어를 직접 혼자 몰면서 장애인이 겪는 고통을 체험한 기자의 보도를 본 적이 있다. 그렇게까지 안 해도 된다. 뒤에서 휠체어 밀면서 동행만 해도 왜 장애인들이 그들의 이동권을 보장하라고 목 놓아 외치는지를 금방 이해할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