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때부터 단짝인 두 친구가 있다. 한 친구는 같은 중학교를 다닌다. 마음이 더 기우는 친구가 다른 중학교를 다니는 탓에 그 친구와 더 붙어다니기는 한다. 셋은 그렇게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우정을 이어가고 있다. 근데 요새 부쩍 그 친구가 마음에 안 든다.
허리 디스크로 고생하는 친구가 눈에 밟혀 반은 달라도 수시로 찾아가 챙겨주는데 정작 내가 필요할 때는 소 닭 보듯 한다. 엊그제는 교과서를 깜빡하고 안 들고 오는 바람에 중학교 들어와 처음으로 벌점을 먹었다. 벌점 1점이 뭔 대수랴 쿨하게 넘기면 그만이겠지만 상 말고 벌은 늘 찝찝하다. 그건 그거고 수업은 들어야 해서 그 친구한테 교과서를 빌리려고 했는데 생깠다. 걔가 원래부터 이기적인 면이 좀 엿보이긴 했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친구니까 어련히 넘어가 주려다가도 그런 성향 때문에 타인의 선의를 무시할 때는 정나미가 뚝 떨어진다. 허리 디스크가 심한데 수술은 안 한다. 그러면서 허리 핑계 대고 조퇴는 수시로 한다. 진로를 예체능으로 잡고 학원까지 끊어놨다는데 열심히 다니는 것 같지도 않다. 그런 몸과 정신머리로 뭘 하겠다는 건지 모르겠다. 체육 수행평가가 있던 날이었다. 허리 때문에 움직이기도 버겁다면서 점수 욕심은 나는지 평가를 받겠다며 나부댔다. 괜히 무리했다가 더 도질 수 있다며 이번에는 기본점수만 받고 평가는 포기하고 2학기 때 더 잘하자고 충고했지만 더 높은 점수 받겠다며 바락바락 우겼다. 그러다가 마음이 바뀌었는지 '하지 말까?' 물러서는가 싶더니 또 하겠다며 변덕이 쭉 끓듯 했다. 그렇게 몇 번을 들이치락내치락했는지 모른다. 생각해 애써 충고해줬는데 귓등으로도 안 듣는 꼴이 얄밉고 속상했다.
다른 중학교 다니는 친구랑 셋이서 만나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모이면 가끔 저녁도 사 먹고 전철 역 부근 다이소엘 학교 준비물 사러도 같이 간다. 엄마아빠가 준 용돈을 카카오뱅크에서 개설한 내 계좌로 입금시켜 미니카드를 들고 다니면서 식사값도 내고 준비물도 산다. 한번은 다이소에서 미술 준비물을 사고 결재를 하려는데 그 친구가 카드가 누구 거냐고 물었다. "내 카든데 왜?" 되물었다. 짐짓 놀란 표정을 짓더니, "준비물 사는데 네가 왜 돈을 써?" 한다. "내 거 내가 사니까 내 돈 쓰지." 했더니, "그런 건 엄마아빠 카드로 사는 거 아니야?" 하며 의아해한다. '그러는 네가 더 이상한데?' 대꾸하고 싶지만 말았다.
셋이 모여 수다를 떨다 보면 금세 해가 이운다. 엄마아빠는 친구들과 노는 걸 터치하지는 않지만 귀가 시간만은 지키라고 엄격하게 당부했고 나도 동의했다. 그게 밤 9시다. 어울려 재밌게 놀다가 헤어지기는 정말 아쉽지만 9시가 되면 어김없이 발길을 돌린다. 엄마아빠가 원칙을 세우긴 했지만 그 원칙에 동의를 했으니 지키는 게 당연하다. 친구들한테도 그런 내 뜻을 이해해 달라고 헤어질 때마다 양해를 구한다. 하지만 그 친구는 늘 냉소적이다. "친구들하고 놀다 보면 늦을 수 있고 그 정도는 엄마아빠가 이해해 줄 때도 됐지 않았니? 넌 꼭 혼자 착한 척 하더라." 어째 말에 가시가 박힌 느낌이다.
아빠와 저녁을 먹으면서 고민을 늘어놓았다. 적잖이 스트레스가 심했었나 보다. 가만히 듣고 있던 아빠가 "사람마다 생각하는 바가 다르고 각자만의 기준이라는 게 있어. 그걸 가치관이라고 부르지. 친구일수록 나와 다른 가치관을 존중해줄 때 사이가 더 돈독해지는 법이란다. 네가 지금 느끼는 불만을 셋이 다 모인 자리에서 털어놓는 건 어떨까? 서로가 서로를 좀 더 이해하는 계기로 삼자면서 말이야. 그렇게 해서도 달라지는 게 없으면…" 뒷말은 하는지 마는지 얼버무리는데 대충 감 잡았다.
복잡해진다. 아빠 말한 대로 셋이 모여 허심탄회란 걸 해보긴 해야겠는데 원하는 결말이 안 나왔을 때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래도 쌓인 정이라는 게 있는데 마음에 안 든다고 걷어차는 건 내 스타일은 아니다. 그렇다고 친구의 모난 면을 모른 척하는 것도 비겁하다. 그러니 머리가 복잡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