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빵맨의 리좀

by 김대일

주말에 아들과 북 콘서트를 진행할 예정이라는데 애독자들로 북적거리면 좋으련만. 일본 소재 대학으로 진학을 결정한 큰아들은 팬데믹으로 인해 한 해가 다 가도록 출국할 엄두를 못 냈다. 역병이 들불처럼 번진 올해(2020년) 초, 출국이고 뭐고 이참에 미뤄뒀던 시집(詩集)이나 내자고 작정했다. 두 부자(父子)는 아예 출간 마감 시한을 못 박아 두고서는 각자 일주일에 시 세 편씩 완성시키는 강행군을 이어갔다. 책을 내야겠다고는 꽤 오래전부터 마음먹었던 바이지만 마음만 먹다 마나 싶다가 어수선한 역병 시국이 되레 전화위복이 된 셈이었다. 학창 시절 시를 가까이했고 고교 문예반 활동에도 왕성하게 임했던 아비보다 군말 없이 동참해 준 아들이 더 대견하다. 게다가 시집 디자인에 쓸 제 아비의 캐리커처까지 그렸다고 하니 꿍짝 잘 맞는 부자 사이가 여간 부러운 게 아니다. 아, 경이로운 DNA 내리 물림이여!

조는 중학교 동기다. 그때나 지금이나 양쪽 볼이 빵빵해 호빵맨을 닮았는데 사람 좋아 보인다는 소릴 곧잘 들었을 게다. 실제로 늘 웃는 상에 쾌활하고 유들유들하기까지 해 동기들 사이에서는 붙임성 좋기로 정평이 났다. 그에 대한 또 다른 기억으로, 학교에서 IQ 검사를 했는데 지수가 거의 멘사 수준이었다는 거. 두뇌까지 명석하다니! 허나 내 기억 속에 콱 박힌 그에 대한 잔상은, 마음에 드는 시인의 시나 본인이 습작한 시를 공책에 옮겨 적어 나와 서로 돌려 보던 조, 가끔 그의 집에 놀러 가 연배가 한참 위인 조의 형 방(아지트 느낌인 게 꼭 다락방 같은) 책장에 보무도 당당하게 진열되어 있던 플레이보이 잡지에 놀란 토끼 눈을 한 나를 재밌어하면서 거리낌 없이 집어 주던 조의 모습이다. 한창 감수성이 예민할 시기에 순수성과 선정성을 동시에 공유한 특별한 사이, 그와 나의 관계를 나는 이렇게 멋대로 규정짓곤 한다.

다른 고등학교로 배정받아 뿔뿔이 흩어진 뒤로 연락이 전혀 닿지 않다가 같은 대학 ROTC 후보생으로 재회해서 지금까지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전역한 뒤 조는 굴지의 통신사에 입사했다. 지금은 지역본부에서 근무 중이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본사 홍보실에서 오랫동안 언론 홍보 담당으로 잔뼈가 굵었다. 호기심을 참지 못하는 천성인 데다 업무 때문에라도 자연스럽게 언론 매체와 교류가 잦아서인지 새롭고 신기한 정보를 받아들이는 데 기탄이 없고 또 그걸 자기 것으로 만들어 응용하는 데도 수완이 좋다. 그가 즐기는 SNS를 훑어보면 '10만 원대 냉장고', '고종 때 영어교재', '2020 올림픽을 서울에서 열자' 따위 기발한 읽을거리가 지천으로 깔려 있다. 그걸 또 맥락 없이 툭 던지기만 해서는 큰 호응을 기대하기 어려우니 이런 정보를 왜 올리는지에 대해 간략하지만 설득력 있게 주절거림으로써 네트워크 속 친구들을 호기심의 세계로 끌어들이는 기발한 능력도 갖추고 있다. 다채롭고 기상천외한 정보들이 무더기로 쌓여 있는 걸로 봐선 그가 건드리지 않은 분야가 별로 없는 것 같고 잡학다식함의 폭은 그 가늠이 어려울 지경이다.

SNS 얘기가 나온 김에, 오프라인은 말할 것도 없고 온라인 세계 속에서 관계를 맺은 친구들을 살뜰하게 챙기는 그의 배려가 참 따뜻하다. 댓글은 관심의 다른 이름이다. 누군가가 올린 게시물을 꼼꼼하게 읽은 뒤 항상 댓글을 달아 공감을 드러내는 꾸준함은 끈끈한 유대감의 표징인 셈이다. 게다가 소모적이고 상투적인 수박 겉핥기 식이 아닌 진정성이 충만하고 정성까지 깃든 댓글은 그 질적인 측면까지 감안함으로써 상대방을 더없이 흐뭇하게 만드는 마력을 지녔다. 원래 후덕한 사람이긴 한데 나이가 들어서는 소통의 격조까지 더해져 폭넓은 인적 네트워크만큼이나 두터워지는 관계의 친밀도가 샘이 날 만치 경이롭다.

나는 조를 볼 때마다 리좀rhizome이란 단어가 떠오른다. 시작도 끝도 없으며 항상 중간, 사물의 틈, 존재의 사이, 간주곡을 의미하는 들뢰즈와 가타리라는 철학자들에 의해서 널리 알려졌다는 그 리좀 말이다. 언제 구입했는지도 모르는 청소년용 철학 입문서를 먼지가 수북이 쌓이도록 표지조차 들추지 못하는 주제에 철학 용어를 논하는 게 내가 봐도 가당찮지만, 한 건축가가 쓴 책에서 읽은 리좀의 의미는 조의 인간 관계망을 그대로 묘사한 것처럼 느껴졌다.


반면 가나자와 미술관은 다양한 크기와 모양의 전시장들이 불규칙적으로 흩어져 있는 모습을 띠고 있다. 이 미술관에는 딱히 중앙 홀이라 부를 만한 공간이 없다. 전시장들의 간격도 제각각이어서 복도들은 마치 강북의 골목길처럼 얼기설기 엮여 있다. 이런 골목길 같은 관계망을 어려운 말로 ‘리좀’이라고 부른다. 리좀rhizome은 감자나 고구마 같은 식물의 뿌리 모양을 지칭하는 말인데, 건축에서는 골목길 망처럼 여러 갈래로 엮여 네트워크를 이루는 것을 말한다.

- 유현준, 『어디서 살 것인가』, 을유문화사, 74~75쪽

조와 연결된 인간관계에서 편중된 무게 중심이란 건 따로 없다. 한 사람 한 사람이 고유한 무게 중심으로써 서로 동등하게 마주 대하는 수평적 관계를 유지한다. 그러한 관계가 맺어지는 양상은 잔뿌리와 잔뿌리가 연결되어 또 다른 잔뿌리를 생성하면서 관계망을 넓히는 그야말로 리좀이다. 관계는 다채롭지만 촘촘하며 진득하면서 차지다. 그러니 한번 맺은 관계는 엔간해서는 파탄날 일이 거의 없다. 물론 항상성을 이어가려는 조의 부단한 노력 덕분이긴 하지만.

서울에 볼일이 있어 조의 자가용을 얻어 탄 적이 있었다. 주말 정체가 심했던 내부순환로 위에서 녀석이라서 더 충격적일 수밖에 없는 말을 들었다. 한때 동고동락했던 ROTC 한 동기가 화제로 올랐다. 2년 후보생 생활을 함께한 그 동기에 대한 조의 예전 평가는 무척 후했다. 자신한테는 부족하다고 느끼는 카리스마랄지 통솔력, 조직에 대한 책임감이 남달랐던 녀석에게서 믿음직함 같은 걸 느꼈다고나 할까. 하지만 후보생 시절 때 겉모습과는 판이하게 자기 입맛에 맞춰 사람을 이리 재고 저리 따지는 간사하고 가식적인 소인배라는 게 전역 이후 잇따른 해프닝을 통해 드러나고 된다. 어지간하면 묻어 두고 넘어갈 텐데 결정적으로 사람 좋은 조한테까지 파렴치한 행상머리를 저지르자 조는 난생처음으로 인간에 대한 배신감과 분노로 치를 떨고 말았단다.

잘 다니던 대기업 건설 회사를 퇴사한 그 동기가 그 전에는 콧방귀도 안 뀌던 단톡방을 기웃거리더니 카리스마 넘치고 책임감 쩔던 예전 후보생 때처럼 굴더라나. 그렇게 구는 녀석을 더는 두고 볼 수가 없었던 조는 조니까 더 메가톤급인 폭탄 발언을 한다. 회원들에게 그 녀석이 단톡방에서 계속 활동한다면 자기는 미련 없이 탈퇴하겠다고, 그러니 자기냐 그 녀석이냐 양단간에 결정을 내리라는 최후통첩을 날린 것이다. 어마뜨거라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결국 그 동기가 자진해서 탈퇴를 하고 사라졌다.

“내 눈에 흙이 들어가는 한이 있어도 그 녀석은 다신 절대 안 본다. 남들은 나를 좋으면 좋고 싫어도 좋은 허허실실로 알고들 있지만, 한 번 아닌 건 끝까지 아닌 거다. 나 성깔 무쟈게 더럽거든.”

호빵맨을 닮은 양쪽 볼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런 녀석이 나는 되레 반갑고 고맙다. 늙어가면서 가끔 만나 술잔 기울여도 전혀 부담이 없는 참 인간적인 녀석이라는 걸 새삼 일깨워줬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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