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든 개
고영민
나에게는 나이든 개가 있어요*
잘 먹지 않고
잘 걷지도 못하는
하루 종일 눈을 감고 있는
사람에게 1년이
개에게 왜
7년인지
나는 알 수가 없어요
하지만 나에게는 늙은 개가 있어요
부르면 천천히
눈을 떠 주는
*미야가와 히로의 동화 '나에겐 검둥이란 개가 있어요'를 변용함.
(일요일 TV프로 중 가장 볼 만한 게 뭐냐고 내게 물으면 당장 <TV 동물농장>이라고 말하겠다. 내 몸뚱아리 건사하기도 벅차서 '반려' 자 붙은 이물 기르자면 차라리 집을 나가겠노라 으르딱딱거리는 내가 그 프로그램만은 빼놓지 않고 시청하는 건 이율배반적이다. 같잖은 변명을 대자면 직접 밥 주고 똥 치우는 대신 홀가분한 제삼자의 시선으로 쳐다보는 게 오히려 그것들한테 더 감정이 이입되면서 허물없어 지는 느낌이 들어서겠다. 여기서 중심이 되는 단어는 '보다視'이다.
꼭 관찰자로만 남고 싶은 까닭은 누차 말하지만 내 몸뚱아리 건사하기도 벅차서이다. 다가올 나의 소멸이 공포스러운데 너, 그, 그녀, 그것들의 소멸 앞에 담담해지기는 불가능하다. 건들면 바스라지기 쉬운 성정으로는 도저히 말이다. 그러니 차라리 정을 안 주기로 했다. 그러니 차라리 못되게 굴기로 했다. 그러니 차라리 멀찍이서 보기만 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