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마누라 때문에 심기가 불편해진 나는 말 안 섞은 지 며칠 됐다. 화요일 쉬는 김에 월요일 저녁 가게 문 닫고 집에 바로 가는 대신 동네 돼지국밥 가게 들러 국밥에 소주 한 병을 깠다. 배만 든든해지고 마음은 여전히 허해서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틀어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문지방 닳듯 자주 들락거렸던 빈대떡 가게를 이태 만에 찾아가 나 혼자만의 2차를 즐기기로 했다. 배가 불러 푸짐한 안줏거리 대신 간단하게 먹태구이를 주문하고 맥주와 소주를 섞어서 거푸 마신 나는 스마트폰 액정화면에 눈을 뺏겨 귀담아들을 것 같지 않는 가게 여주인한테 묻지도 않은 이야기까지 수다스럽게 주워섬겼다. 귀부인 티가 나는 가게 여주인은 조붓한 가게 안에 손님이라고는 나밖에 없다 보니 행여 내가 무안을 타고 어색해할까봐 적당하게 비위를 맞춰 주는 척하지만 예전이나 지금이나 영혼없기는 매한가지다.
화이트보드에 마카펜으로 대충 휘갈겨 써놓은 메뉴 중 하나를 주문하고 기다리는 동안 전채로 물김치와 삶은 계란 한 알, 콩나물무침을 무심하게 내놓는 동네 빈대떡 가게 여주인은 결코 먼저 말을 섞는 법이 없다. 테이블 네 개로 가게 안이 꽉 차는 조붓한 공간에도 굴하지 않고 나 또한 그니에 버금가는 침묵으로 일관하면서 내내 혼술을 즐긴다. 안주로 나온 명태찜에 연신 젓가락질을 해대면서 그 좁아터진 가게에서 나사 두어 개쯤 풀린 해이함을 맘껏 누리는 나는 행복하다. 포만감에 행복해하는 고로처럼. (2018.09.07.)
장소도 사람도 그대로이고 내놓은 전채마저 달라진 게 없는데 그때 침묵으로 일관하던 나는 지금 떠벌이가 되었다. 꼬집어 말할 수 없는 감정의 혼재에서 비롯된 같잖은 일탈인 성싶은데 조울이 널을 뛰는 일상인지라 내게 유난스러울 것도 없다. 그런데도 나는 왜 귀가할 생각은 않고 응대를 귀찮아하는 타인 앞에서 주저리주저리 떠들어 대는 것인가.
술은 비어 더 주문한다 해도 내 간을 썩 걱정하지 않을 여주인이지만 손님 뜸하면 그길로 가게를 접는 걸 잘 아는 나로서는 마감이 임박해 엉덩이가 들썩거리는 그녀한테 공연히 헤살을 부릴 까닭이 없어서 자리를 떴다. 아직 밤은 길고 내 주량은 술을 더 불러도 견딜 만해서 여기저기를 기웃거렸지만 막잔이 고픈 취객 혼자 기댈 공간은, 없었다. 그 사실에 분개하면서도 왜 혼자냐는 자문에 답이 궁한 나는 결국 서러웠다. 캔맥주를 까 편의점 앞 벤치에서 홀짝거리는 걸로 더 무거워진 밤의 무게를 감당하려 했지만 객쩍은 짓이었다. 허위허위 마뜩잖은 귀갓길에 오르는 나는 그냥 유령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