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연애사에 마음 빼앗길 나이는 지났다. 하물며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연예인이야. 근데 클론 구준엽의 사연은 달랐다. 끌림이 있다. 구준엽은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해 대만 여배우 서희원과 만남, 이별, 재회, 결혼까지 이십 년 인연을 자분자분 털어놓는데(연예인치고는 눌변인 그여서 더 끌렸는지 모르겠지만), 이십 년 전이나 변함없이 한 여자만을 사랑할 뿐인 순정남과 이십 년 전 전화번호를 그대로 남겨 둬 인연의 끈을 놓지 않은 여배우에게서 특별한 뭔가에 이끌려 가슴 뭉클하게 만들었다. 그걸 사랑하면 떠오르는 영원성, 불멸성이라는 클리셰 정도로만 치부한다면 어째 밋밋하다. 그보다는 나한테는 굴레와도 같았던 '사랑'에 대한 인식에 대전환을 일으켰던 글이 불현듯 떠올라 그들의 순애보에 포갰다.
사랑에 대해서 말할 때 우리는 열정이나 도취에 대해 쉽게 말하지만 진정한 사랑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의 완성은 청춘이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가능한 것이 아닐까 가만히 생각해봅니다. 넘치는 것은 젊음뿐, 상대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헤아릴 여유는 조금도 갖지 못해 서로를 오독하는 시기를 지나야 우리는 사랑에 대해 제대로 이야기해 볼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고요. 공고한 '나'의 성을 허물고 타인에게 마침내 자리를 내어줄 때, 사랑은 눈부신 그 폐허에서 시작할 테니까요. (백수린 소설가, 경향신문 <책 굽는 오븐-청춘이 지난 후 비로소 생기는 '사랑의 자리'>, 2018.06.01.에서)
구준엽-서희원 커플을 여기에다 바로 대입시키는 데 무리가 없지 않겠지만 나대로 백수린 소설가의 글이 떠오른 것은 가슴 아픈 이별을 단행했음에도 이십 년 후 재결합한 예사롭지 않은 그들의 연애사가 아마도 그들의 불꽃 같은 청춘의 시기, 자칫 서로를 오독하는 시기를 이별이란 댓가로 지나갔기 때문에 더 값지게 영글었지 않았나 강하게 어필하고 싶어서인지 모른다. 스스로의 공고한 성을 허문 그 폐허 위에서 다시 시작한 사랑이어야만 비로소 영원성, 불멸성을 얻게 된다는 것, 팔불출처럼 사랑타령을 늘어놓는 구준엽이 전혀 고깝지 않고 미친 듯이 부러운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