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점방 문을 열자마자 낮에는 본업, 밤에는 부업을 하는 남자가 득달같이 들어왔다. 밤일을 마치고 돌아가던 길에 머리를 깎으려던 참이었다. 본업이 무언지는 모르지만 부업은 안다. 개장 안 한 해운대 아무개 호텔을 밤새 지키는 일이다. 호텔의 소유권자와 호텔을 점유하려고 시도하는 측 사이의 분쟁인가 본데 소유권자가 호텔로 들어오려는 모든 시도를 차단하려고 그를 고용한 모양이었다. 한두 달 정도만 봐줄 줄 알고 시작한 일이 재판이 길어지자 벌써 일 년이 다 되어 간댔다. 일에 치여 밤낮이 없다 보니 머리 깎을 짬도 별로 없어서 한번 깎을 때 바싹 민다고 했다. 흔히 해병대 돌격머리라 칭하는 스타일을 깎새들은 선호하지 않는다. 깎고 나면 재방문까지 꽤나 오래 걸리니까. 한마디로 회전율이 나쁘다는 소리다. 하지만 남자의 사정을 듣고 보니 그만은 그럴 법도 하겠다고 설득당하고 말았다.
남자는 이 동네 토박이라고 했다. 그러더니 내 점방은 대박이 날 게 틀림없다고 덕담을 늘어놓았다 생뚱맞게. 그리 듣기 싫진 않았지만 근거 없는 괜한 빈말이면 뒤통수 어디에다가 빵구를 낼 기세로 귀를 쫑긋 세웠다. 요약하면 이렇다. 동네 터줏대감으로 부동산 일까지 오래 해봐서 동네 사람들 씀씀이 경향을 좀 안단다. 해운대마냥 삐까번쩍한 동네는 아니라 해도 알부자들이 도처에 깔려 있는데 이 양반들이 돈 쓰는 데는 그리 인색하단다. 그들이 싸고 잘 하는 곳만 찾아 다녀서 그런가 몰라도 다른 데 비하면 전반적으로 물가가 저렴한 편이라고. 내 점방에서 두어 블럭 떨어진 데서 커트점을 낸 여자가 서너 해 동안 돈을 긁어 모았다나. 나처럼 커트 요금 오천 원으로 시작했다.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루자 요금을 천 원 올렸단다. 몰려드는 손님들로 제때 점심 먹어본 기억이 없었는데 점점 정시에 끼니 때우고 식곤증으로 졸기까지 했다나.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바로 맞은편에 새 커트점까지 들어서자 썰물 빠지듯 손님들이 뚝 끊겼다. 얼마 안 지나 여자는 점방을 팔고 손을 털었다. 이 동네가 그렇게 짜다는 얘기다. 천 원 한 장에 점방이 휘청거릴 지경이면 말 다한 거지.
남자 얘기를 가만히 듣는데 기시감, 아니 어디서 많이 들었던 기청감으로 고막이 요란했다. 오월 중순께 근처 전철 역과 맞닿은 지은 지 얼마 안 돼 이 동네에서 제일 때깔 좋고 비싼 아파트에 산다는 손님이 오천 원 요금을 육천 원으로 올리고부터는 단골 커트점을 안 간다고 자랑 삼아 떠벌리고는 요금 안 올리면 자주 들르겠다고 딴에는 농을 걸듯 으름장을 놓은 게 하도 기억에 남아서 글로 남기기까지 했다.(<요금 안 올리면 자주 들를께요>, 2022.05.23.)
밤에 부업하는 남자가 말한 커트점과 비싼 아파트 사는 손님이 안면몰수한 커트점은 원장 성별도 다르고 위치도 다르지만 요금을 천 원 올려 악영향을 자초한 바는 팩트라서 이 동네 시장성을 검토하는 데는 꽤나 신빙성이 있어 보였다. 한 점방은 손 털고 떠났다는데 역시 요금을 올린 다른 곳의 운명은 앞으로 어찌 될지는 좀 지켜봐야겠지만 말이다. 삼인성호三人成虎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세 사람만 우기면 없는 호랑이도 만든다고 해서 개인이 동일한 진술에 반복적으로 노출돼 점점 익숙해지면 그 진술을 진실로 받아들인다는 '진실성 효과' 이론과 비슷하다. 한 사람만 더 내게 요금에 얽힌 이 동네 커트점 수난사에 대해 아퀴를 짓는다면 나는 깎새를 완전히 접지 않는 한 점방 벽에 내건 요금표를 떼는 불상사를 부러 벌이지는 않을 작정이다. 물론 당장 요금을 올리니 마니 할 만한 입장은 아니지만 동네 특성이 정 그러하다면 요금에 관한 한 입 닫고 귀 닫고 지내는 게 제대로 된 처세이다. 근데 참 희한하다. 돈 한두 푼에 의가 상한다는 말이 진짜고 동네마다 기풍이라는 게 있다는 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