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봉 한겨레 문학전문기자는 절묘한 시점에서 표절에 관해 논했다. 칼럼 내용 중에 특히 인상깊은 대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 김소월의 시 '진달래꽃'은 1922년 잡지 <개벽>에 발표됐다. 오산학교 스승인 안서 김억의 추천이었다. 그 전해인 1921년에 김억이 펴낸 번역시집 <오뇌의 무도>에는 예이츠의 시 '그는 하늘의 천을 원합니다'가 '꿈'이라는 제목으로 바뀌어 소개됐다. 가난한 화자가 하늘의 천 대신 자신의 꿈을 그대의 발아래에 펼쳐 놓을 테니 그 꿈을 사뿐히 밟으시라(tread softly)는 것이 시의 대략적인 내용이다. 소월의 '진달래꽃' 중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가 바로 이 시 속 "나의 생각 가득한 꿈 위를/ 그대여, 가만히 밟고 지나라"라는 대목을 표절한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된 바 있다.
- 1959년 공쿠르상 수상작인 앙드레 슈바르츠바르의 <마지막 의인>의 10여줄은 고대 유대교 연대기의 문장을 베낀 것으로 드러나 표절 논란에 휘말렸다. 시몬 드 보부아르는 작가 편에 서서 이 사태를 개탄하며 이렇게 썼다. "어떤 문장은 결국 그의 것으로 여기고야 말 정도로 머릿속에 들러붙는다." 이 일화는 프랑스 문학연구가 엘렌 모렐앵다르의 책 <표절에 관하여>에 소개됐는데, 이 책에는 표절에 관한 우리의 강박관념을 깨뜨리는 유명인들의 발언이 여럿 인용돼 있다. "고아처럼 오로지 하나뿐인 책, 다른 그 어떤 책의 후손도 아닌 책이 과연 존재할까?"(카를로스 푸엔테스), "그 어떤 텍스트이건 모두 과거의 인용문들의 새로운 직조물이다."(롤랑 바르트) 등등.
- 표절은 물론 나쁜 짓이다. 표절은 원저작자의 영감과 노동의 결과물을 훔치는 도둑질이며 독자를 속이는 기만행위이기도 하다. 스위스 작가 장자크 피슈테르의 소설 <편집된 죽음>(원제는 '별쇄본')은, 비록 원한과 복수심에서 비롯된 음모라고는 해도, 표절이 초래할 수 있는 파괴적 결과를 섬뜩하게 그려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표절을 적발하고 단죄하는 것만이 능사일까. 아니 애초에 그것이 타당하거나 가능한 일일까. 푸엔테스와 바르트 등의 주장에서 보다시피 완벽하게 독창적인 말이나 글은 가능하지 않다. 바둑을 두고 글을 쓰는 인공지능의 사례를 생각해 보자. 그들의 깜짝 놀랄 만한 성취의 바탕을 이루는 것이 이른바 '딥 러닝'인데, 기보와 문장을 최대한 많이 입력하는 것이 딥 러닝의 기본이다. 그러니 일견 고유해 보이는 인공지능의 묘수와 작문이란 기존의 행마와 글쓰기의 흉내이며 변주일 뿐이다. (최재봉 한겨레 선임기자, <최재봉의 탐문-표절>, 한겨레, 2022.06.29. 에서)
표절을 옹호하는 건 결코 아니지만 칼럼의 서브 타이틀인 '완벽하게 독창적인 말과 글이 어디 있으랴' 처럼 불가피한 면이 없지 않다는 게 칼럼을 읽고 난 내 소견이다. 과거 어느 시점에 보고 들었던 것이 이미 머릿속에 들러붙었다가 창작자의 것으로 재창조된, 그것이 따라쟁이의 모방 심리건 청출어람하려는 예술적 포부에서건, 독창적이고 순수한 창작물이란 것 자체가 원래부터 없다고 본다면 표절에 대한 우리의 관점도 변해야 하는 게 맞다. 정보와 지식의 독점을 막고 사회적 공개를 통해 공유하자는 카피레프트 이념과 일견 통하는 미래지향적 논의 말이다.
내가 서두에서 절묘하다고 한 까닭은 최근 작곡가 유희열에게서 불거진 표절 시비로 한바탕 시끄러웠고 논란이 가시질 않아서다. 그의 음악을 사랑했던 무수한 대중들은 작곡가로서 보여준 탁월한 능력이 실은 타인의 것을 베낀 데 불과한데도 자기의 창작물인 양 버젓이 내놓는 파렴치함 때문에 더 실망하고 분노하는 성싶다. 하지만 사카모토 류이치 측의 입장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나로서는 유희열의 표절에 억울한 면이 없지 않다고 본다. 유투브에 떠도는 원곡과 유희열이 작곡했다는 곡을 대조한 걸 들어봤지만 내 귀로는 판단이 잘 안 선다. 유사성은 모르겠으나 왕창 베꼈다고 우기기에는 그 자의성이 대단히 위험해 보인다. 유희열을 변호하는 건 아니지만 위에서 소개한 칼럼을 빌어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밝히자면, 문학이건 음악이건 어떤 예술 분야에서건 간에 순수 창작이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게 과연 존재하는지 몹시 궁금하다. 예술가의 창조물 안에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시몬 드 보부아르의 말마따나 '그의 것으로 여기고야 말 정도로 머릿속에 들러붙'은 영향 내지 모방의 인자가 전혀 없다고 말할 수 있는 자가 누구인지 나는 몹시 궁금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