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감 낚기

by 김대일

아무 것도 안 떠올라서 아무 것도 안 써질 때가 종종 있다 . 그럴 때를 대비해서 나는 신문을 안 빠지고 읽는다. 읽다가 직관적으로 이거다! 싶은 대목을 발견하면 그걸 글감으로 쟁여 뒀다가 나중에 꼭 써먹는다. 어제(7/1)는 운 좋게도 그런 걸 세 개씩이나 낚았다.

1. 국어국립원의 자료에 따르면 한국어 어휘는 대략 44만 개라고 한다. 이 중 명사는 34만 개, 동사는 7만 개이다. 명사가 많은 사회는 딱딱하게 굳은 사회다. 명사가 소유를 대변한다면 동사는 존재를 나타낸다고도 할 수 있다. 명사보다는 동사를 많이 사용할수록 세상은 넓어진다. 움직일수록 몸이 부드러워지고 건강해지는 것과 같은 이치겠다.(이갑수 궁리출판 대표, <이갑수의 일생의 일상-국어사전>, 경향신문, 2022.07.01. 에서)

2. 다음은 남경주와 최정원 주연으로 출발한 한국 뮤지컬 30년 약사를 ‘뮤지컬 세대론’으로 풀었다. 이를 10년 주기설로 대입하니 지금은 뮤지컬 4세대에 해당한다.

① 1세대: 남경주와 최정원 듀엣이 개문발차하고 주연으로 활약한 1990년대는 한국 뮤지컬의 실질적 토대가 만들어진 때다. 서울 잠실의 롯데예술극장은 국내 첫 ‘뮤지컬 전문 제작극장’을 표방하고 이 시대의 구심점이 됐다. 그 1기 주역이 두 사람이다. 이 듀엣의 활약으로 뮤지컬은 연극의 하위 장르에서 벗어나 독립 예술로 전문화하기 시작했다. 뮤지컬 ‘명성황후’의 에이콤과 냉정한 오디션 문화를 정착시킨 삼성영상사업단 또한 1세대의 숨은 주역이다.​

② 2세대: 블록버스터 뮤지컬 시대는 2000년 뉴밀레니엄과 함께 왔다. 말로만 듣던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오페라의 유령>이 국내 제작으로 LG아트센터에서 첫선을 보였다. 엄격한 외국 원작 제작 시스템으로 국내 생산한 ‘라이선스 뮤지컬’의 첫 성공 사례였다. 뮤지컬은 공연산업의 총아로 떠올랐다. 이혜경과 김소현, 류정한 등이 신성으로 등극하여 지금도 꾸준히 활약 중이다. <오페라의 유령>의 설앤컴퍼니와 신시, 오디 등 전문 제작사 중심 프로듀싱 시스템 정착기다. 영화에서 뮤지컬로 갈아탄 조승우는 <지킬앤하이드>로 팬덤을 이끌었다. 이 시기에 옥주현도 뮤지컬 <아이다>로 데뷔했다.

③ 3세대: 3세대의 전령사는 김준수다. 지금은 굴지의 제작사로 성장한 신생 EMK가 2010년 프랑스 뮤지컬 <모차르트>의 세종문화회관 초연에서 아이돌스타 김준수를 타이틀롤로 내세웠다. 몇분 만에 전회 완판 신기록을 세웠다. 뮤지컬의 획기적인 전환을 이끈 10년 주기설을 입증하며 이후 ‘스타 마케팅 시대’를 열었다. 결과적으로 제작비와 관람료 상승 등 압축 성장 과정의 문제점도 드러났다. 외국 뮤지컬뿐만 아니라 다양한 소재의 창작 뮤지컬 붐도 일었다.

④ 4세대: 2020년대 초반인 지금은 백화제방(배우), 백가쟁명(제작사) 시대다. 독과점 시장에서 잦은 동반 출연으로 최정원과 남경주 듀엣을 ‘부부’로 착각하던 시대는 추억이 됐다. 김호영처럼 재능과 끼로 똘똘 뭉친 배우들과 얄미울 정도로 셈에 밝은 제작사들이 혈투를 벌이는 전쟁터다. 여기에 열화와 같은 소비자 광팬들은 ‘프로슈머 권력’이 돼 서로 경쟁에 불을 붙이며 시장을 이끈다. 작금의 특정 배우의 캐스팅 개입 여부 논란은 이 와중에서 드러난 과열 현상 중 하나다.​

우리나라 공연산업의 전체 매출 중 뮤지컬이 반 이상을 차지한다. 타 장르에 비해 인기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공연예술 전체 시장 규모라야 아직 1조원에도 미치지 못한다. 자산 규모로 1조원이 넘는 스타트업 유니콘 기업들이 마구 등장하는 마당에 한 분야의 산업 전체 총량이 그만도 못하다면, 답은 분명하다. 더욱 분발해야 한다는 것. 사소한 다툼을 넘어 선진 제작시스템 구축에 여전히 매진해야 할 때라는 이야기다. (정재왈 예술경영가, <정재왈의 아트톡-뮤지컬 세대론>, 경향신문, 2022.07.01. 에서)

3. 황정민과 송강호의 연기를 영업사원에 빗대 비교하자면 이런 식이다. 황정민은 자기가 팔 물건의 정보를 세세히 잘 알고 있다는 점을 명확히 드러내는 영업사원 같다. 고객이 어떤 제품을 원할지를 정확히 꿰뚫고 있다. 달변까지 갖췄다. 고객은 물건 파는 데 열중하고 있는 영업사원의 의도를 잘 알면서도 마음이 넘어갈 수밖에 없다. 송강호는 조금은 어눌한 영업사원처럼 느껴진다. 제품을 두리뭉실 설명하는데 기이하게도 믿음이 간다. 품질이 떨어지는 제품을 팔지 않을 듯한 정직함이 말과 행동에 배어 있어서다. 알고 보면 그는 제품에 대해 상세히 알고 있고, 고객의 요구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다.(라제기 영화전문기자, <라제기의 '배우'다-연기하지 않는 듯한 연기의 대가 송강호>, 한국일보, 2022.07.01.에서)​

뮤지컬은 엊그제 나르시시즘을 언급할 때 곁다리로 써먹어서 당분간은 일없다. 2021년 개봉한 <인질>에서 황정민 역을 본인이 직접 맡은 게 하도 이채로워서 그걸로 글(<횡설수설>, 2021.08.18)을 쓴 적이 있지만 송강호는 늘 관심 밖이었다. 별 건 아니지만 송강호와 얽힌 개인적인 에피소드도 있는데 말이다. 고로 당장 써먹을 글감은 명사와 동사에 관한 얘기가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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