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맛이 영 없고 점방 일이든 글 나부랭이를 끼적대는 짓 할 것 없이 재미가 없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감흥 없는 일상, 나는 슬럼프에 빠진 게 틀림없다. 이럴 때는 다 때려치우고 녀석들을 불러내 진탕 마시고 떠들었으면 좋겠는데 그러지를 못하니 더 시르죽는다. <나폴리 우럭>의 우럭은 참 맛있었다. 회, 튀김, 매운탕이 한 세트로 나오는 그 집 우럭 맛도 일품이거니와 계절마다 한 번은 꼭 만나 회포를 풀던 그 여흥에 겨워 사는 재미를 느꼈던 적이 있었다.
<나폴리 우럭> 회동 (2016.08.27.)
이제는 이전하고 없는 <나폴리 우럭>이 동래경찰서 맞은편에서 영업하던 시절, 장학사가 된 대학 동기를 축하하기 위해 거기에 모였다. 예약만 받아 장사를 할 정도로 늘 문전성시인 우럭 전문 요리점을 우리의 장학사 양반이 거하게 한 턱 쏘겠다는 일념 하나로 일주일 전에 예약을 했는데도 매일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는 후문이다. 공술 한 잔 보고 십 리 간다는데 그 정성이 가상하니 맹물인들 취하지 않을쏘냐.
1991년 국어국문학과 신입생은 60명이고 그 중 남자만 13명. 까까머리 머스마들이 한 무더기로 들어오기는 80년대 이래로 세 손가락 안에 들 만큼 충격적인 사건이라 그 시절로부터 화중충花中蟲, 즉 꽃밭의 벌레들이란 자부심서껀 같잖은 사나이 우정 따위 감정이 그네들 사이에서 횡행하다가 어느덧 지천명을 바라보는 중년이 되었어도 여전히 명맥을 유지하는 게 기특하기 그지없다. 13명이 시종일관 통신 축선 상에 대기 중인 건 아니다. 개중에는 수취인 불명이 되었거나 부산 아닌 데서 터 잡아 소식까지 끊고 사는 녀석도 여럿 되니까. 연락 두절인 녀석들을 빼고 나면 부산에서 밥 벌어먹고 사는 대여섯쯤 남을라나.(같은 부산 하늘 아래에서도 불통인 녀석이 없진 않지만 아무튼)
명석한 국어 선생으로 이름께나 날리다가 교장 선생님 한 번 해보겠다고 그 첫 단추인 장학사로 방향을 틀었는데 뜻밖의 고배를 마신 뒤 우울증으로 한참 고생하더니 절치부심해 기어이 교육청에 입성한 이 장학사(이후로는 ‘이장’이라 칭함), 사립 고등학교에서만 16년을 근속하면서 똑 부러진 대학 진학 지도로 다른 건 모르겠고 그 부문에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이 선생(이쌤), 한국 근대소설 연구의 대가로 저명했던 부친을 학과 교수로 모신 탓에 학창시절 내내 본의 아니게 비교 대상이 된 울분에 겨워선지 졸업 후 한동안 종적이 묘연하다가 결혼한다며 불쑥 나타나서는 모교의 인문학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몇 해는 따뜻하게 보내는 중인, 하지만 내년 여름이면 다시 백수로 복귀할 공산이 크다는 김 박사(김박), 대학 졸업 후 질풍노도의 시기를 한참 겪다가 마음 돌이켜 먹고 교육대학원에서 교원 자격증을 취득해 기간제 국어교사로 전전하지만 3년 전 부임한 여고에서 정교사 발탁 가능성이 보일락 말락 해 내심 기대를 걸고 있는 김 선생(김쌤),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실업급여로 연명하던 나(백수), 이렇게 다섯이서 <나폴리 우럭>에 회동했다.
나를 빼면 다들 제 버릇 개 못 주듯 세종대왕께 빌붙어 사는 품으로는 도긴개긴이긴 한데 국어국문학과 출신이랍시고 주안상을 앞에 놔두고 시구를 읊조리고 고담준론이나 들먹일 줄 알았다면 그런 오산도 없다. 술자리에서 금기시되다시피 한 문학의 ‘문’자만 꺼냈다간 돼먹잖은 짓으로 조롱당하기 일쑤고 급기야 집단 이지메를 감수해야 하는 처참한 지경에 이를 수 있으니까 절대 주의해야 한다. 오호통재라, 밥벌이의 고단함에 씹힌 문학의 비애여! 그럼 어떻게 노느냐고? 다섯 녀석이 술 마시면서 노는 현장을 적나라하게 스케치해봤다.
- 이장 : 우리가 얼마나 팔아줬는데 ○○노래방 사장은 갈 때마다 바가지를 씌워. 밉어서라도 다신 안 간다. 니들도 앞으로 거긴 입 밖에도 꺼내지 말아라잉. 그건 그렇고 니는 와 엊그제 혼자 거길 납셨을까?
- 백수 : (김쌤을 쏘아보면서) 뭐시라?
- 김쌤 : (능청스럽게) 마지막 작별 인사는 해야 되지 않것나.
- 백수 :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읎고 얌전한 고양이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카드만 딱 그 짝이네. 이장하고 내가 그리 놀자고 할 땐 노래방 끊었다고 오만 점잔을 다 빼드만, 혼자 갔따꼬? 가서 노래방 여사장하고 단둘이서 작별주를 기울있따꼬?
- 김쌤 : 작별 인사라 안 하나. 학부모가 하는 노래방이래서 내가 얼매나 신경을 썼는지 너거들도 잘 알잖아. 아무리 우리 등골을 홀라당 빼 묵었어도 사람이 그라먼 못써. 회자정리란 말 모리나? 신사적으로다가 마지막 인사는 해야겠다 싶어서리.
- 이쌤 : 암만, 김쌤 마음을 왜 모르까이. 노래방 사장이 과부라는 것도 알고 김쌤 늦장가도 들어야 하는 것도 알제. 그래서 하는 말인데(안그래도 가는 눈이 육감적으로 더 가늘어지면서 흘겨보는데), 재밌드나 김쌤?
- 김박 : 물어볼 기 뭐 있노. 깨가 쏟아짓껏지.
- 김쌤 : 어허, 진짜 술만 묵으따니까!
- 김박 : 손만 잡고 잤어요~~~
- 이쌤 : 안주가 읎네. 김쌤, 뭐 묵고잡노? 우럭 튀김 더 시키주까? 오늘 마 뱃심 든든히 해까고 밤새 씨부리보자. 사장님, 여기 우럭튀김 추가요!
- 이장 : 느그들, 거 말고 수안로타리 쪽에 새로 생긴 노래방이 있는데 기가 찬 기라….
이글거리는 좌중의 시선이 일제히 이장의 얼굴로 모인다. 2차로 동래 우체국 근처 수제 맥주 펍으로 향했다. 돼지 목에 진주일갑세 이장은 수제 맥주만 찾는 마니아로 두어 번 따라갔는데 맛은 차치하고 뭔 맥주값이 금값이여? 한 조끼 값으로 병맥주 서너 병에 쥐포까지 곁들여 한 상 차리겠더만. 아무튼 구닥다리 중년 다섯이서 맥주잔이나 쪽쪽 빨고 있기엔 물 관리 제대로 된 가게 안 풍경과는 썩 안 어울려 살짝 민망했지만 상큼한 꽃들에 둘러싸여 헤벌쭉거리는 중년남자들의 의뭉이 한편으로 귀엽기도 하다.
뭐 하나 빠지는 게 없는 낙원 같은 공간이지만 딱 하나 흠이라면 남녀 공용으로 쓰는 좌변기 한 대가 다인 화장실은 곤혹스럽다. 가뜩이나 전립선비대증이니 과민성 방광으로 요실금 기미까지 언뜻 비치는 다섯 중년남들로서는 뒷간 입장 타이밍을 놓치면 하릴없이 고단한 인내를 감수하며 다음 차례를 기다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니. 화장실 문이 열리자 김쌤과 백수는 쏜살같이 달려가 동시에 문고리를 잡는다. 씨익 썩소를 날린 백수가 어깨를 먼저 문 안으로 들이민다.
- 김쌤 : 같이 싸자. 급하다잉.
- 백수 : 기둘려. 찔끔찔끔거리서 영 찝찝하다.
- 김쌤 : 작작 퍼마시라. 한 잔에 얼마짜린지나 아나? 몇 잔째고?
- 백수 : 술값 자네가 내는 겨? 그라믄 얼른 싸고 몇 잔 더 마시야겠네. 기둘려!
- 김쌤 : 지랄은.
담배가 떨어진 백수가 화장실 밖에서 김쌤을 기다린다. 볼일 다 본 김쌤과 어깨를 겯고 흡연실로 향했다.
- 김쌤 : 책은 읽어서 뭐할라꼬?
- 백수 : 엉?
- 김쌤 : 나이 들어 대갈통에 똥 채울 일 있나?
- 백수 : 뭐라카노?
- 김쌤 : 누군 배알이 읎어서 굽실거리는 줄 아나? 더럽고 앵꼬와도 그게 목숨줄이다 싶으믄 참았어야지. 니 혼자 사나? 우째 그리 철딱서니가 없노. 그래, 다니던 직장 때리치우고 마시니까 술이 더 맛나드나?
- 백수 : ….
- 김쌤 : 직장 생활 하믄서 마음고생 심했던 거 와 모리겠노. 그렇다고 가리늦게 빨간물 든 책 들춰본다고 달라질 게 뭐 있나. 이 나이에 변호사가 될 끼가, 노무사가 될 끼가. 송충이는 솔잎만 묵어도 배가 부른 기라.
- 백수 : 그만둘 만하니까 그만 둔 거 아이가.
- 김쌤 : 대갈통에 똥만 들이찼는 기라 븅신아. 누울 자릴 보고 다릴 뻗으랬다고, 니가 청춘이가?
멱살을 잡고 대거리를 해야 할 타이밍에 웬일인지 말문이 턱 막혀 버린 백수다. 종양을 몇 해 전에 성공적으로 제거했지만 여전히 조심스러워하는 이쌤을 먼저 귀가시키고 이장이 뚫었다는 노래방으로 가 신나게 놀았다. 노래방 도우미의 손을 얌전히 잡고 노래만 부르는, 노래방엘 가서까지도 제 이미지 관리에 철저한 이장의 이상한 강박증은 여전했고, 남자 넷에 여자 둘이란 척박한 분위기에서도 제 파트너라고 짐짓 찜해놓은 도우미하고 노래 대신 야부리만 연신 풀어대는 김쌤, 생판 듣도 보도 못한 재야의 언더그라운드 노래들로 마이크를 독식하면서 입은 뒀다 뭐하냐면서 고래고래 질러대는 김박, 간만에 공술 호강에 들떠 짝으로 들어온 맥주를 병나발로 들이부으며 서비스안주 더 내놓으라고 연신 주인장을 볶아대는 백수는 그날 밤을 한껏 즐겼다. 딱 2시간만 놀다 간다는 철칙을 그날도 고수한 이장 등쌀에 꽉 채운 2시간 뒤 노래방을 나설 때는 자정을 이미 넘겼고, 늦은 밤 출출해진 뱃속을 국수로 달래는 것으로 회동의 대미를 장식했다.
- 이장 : 옛다. 젤 멀잖아 여기서 해운대가.
- 백수 : 내가 거지가?
- 김쌤 : 줄 때 얼른 받아라.
- 백수 : 오늘 여러 번 쪽팔리게시리.
- 이장 : 그러게 성깔 좀 죽이고 살면 어데 덧나나. 잘 다니던 회사는 와 때리치아갔꼬.
- 백수 : 내가 무슨 큰 죄 짓나. 자꾸 와 그라는데 니들?
- 김쌤 : 얼릉 집에 들어가라. 집구석에 틀어박히서 궁상 떨지만 말고 다른 데 자리 있는지 잘 디비보고.
- 김박 : 책 파묵는 짓이 얼매나 배고픈지 아나. 내 봐라. 박사라케도 꼬라지가 이 모양인데 우리 나이에 공부가 웬 말이고. 그건 쫌 아이다. 소싯적에 가오 잡고 호기 있게 니나노하던 기 니 참모습인기라. 그런 니를 다들 좋아라 하는 기고.
심야 할증료까지 더해서 택시 요금은 이만 원을 훌쩍 넘었다. 사람 우습게 보는 것 같아 언짢았지만 잘 받은 셈이다. 얼마짜린가 펴보니 신사임당 할머니가 인자한 미소를 짓고 있었으니까. 셈하고 남은 우수리가 의외로 두둑해 기분이 좋아진 백수지만 맥주 집에서 김쌤이 날린 일갈이 턱턱 걸린다. 송충이는 솔잎만으로도 배부르다…. 더운 밥 먹고 식은 방귀나 뀌는 녀석들인 줄로만 알았는데, 카운터 펀치가 어찌나 얼얼한지 백수는 신새벽에 술이 확 깨더라.
(사족- 이장은 작년에 백혈병으로 죽었고, 이장과 친했던 이쌤은 이장 죽으니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으며, 자유로운 영혼인 김박은 어디서 무얼 하는지 연락이 두절된 지 한참이라. 사회복지공무원으로 전향한 김쌤이랑은 그나마 연락은 하고 지내지만 깎새 점방 차린 백수하고는 라이프스타일이 전혀 안 맞아 만날 날이 요원하다.
6/28은 이장의 1주기되는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