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거밀집지역이어서인지 주차 공간은 늘 부족하다 점방이 있는 동네는. 관할 지자체에서 그걸 해소해보겠다고 왕복 2차선 도로 가에 주차선을 그어놓고 주차장 운영을 민간에 맡겼다고 한다. 길 가에 차를 세우자마자 주차권을 들고 쏜살같이 달려오는 이가 나타나면 그가 이 구역 주차 책임자이다.
허리는 약간 구부정하고 입성은 추레하며 전날 숙취가 가시지 않은 듯 안색까지 새빨개서 병원에 누워 있어야 할 사람이 탈출한 게 아닐까 저으기 걱정이 들 정도다. 허나 그냥 눈으로 어림잡아도 100m에 육박하는 노상 주차장 이 끝에서 저 끝을 쉬지 않고 왕래하는 모습을 보면 골골한 상노인 같은 첫인상과는 사뭇 다른 아직 팔팔한 장년이다.
점방 개업 선물 돌릴 때 눈에 자꾸 밟혀 스윽 건넸을 때 살짝 빈정이 상했더랬다. 맡겨놓은 걸 당연히 받는 것처럼 구는 그는 빈말이나따나 고맙다는 말 한마디조차 건네지 않았다. 아니 그 뒤로 오다가다 마주쳐 내가 먼저 인사를 꾸벅 해도 지나가는 개가 짖나 무시하기 일쑤라 이후로 나도 그를 투명인간 취급한다. 하기사 대중교통만으로 출퇴근하는 내가 그에게 아쉬워할 까닭이 없다. 어디서 깎고 오는지 다른 데는 몰라도 머리만은 유독 말끔하게 정리된, 인사치레라도 내 점방에 머리 한 번 깎으러 오질 않는 그가 곱게 보일 리 없다.
오후 6시가 넘어갈 즈음이면 내 점방과 붙은 국수집으로 들어가 맥주를 마시는 게 그의 정해진 일과다. 주류 판매 허가가 난 국수집이라 거기서 술 마시는 게 흠은 아니지만 문제는 술 마신 뒤에 부리는 그의 주사 아닌 주사다. 그가 맥주를 마시러 들어가서 얼마 안 있으면 어김없이 노기가 잔뜩 서린 그의 호통이 들려왔다. 처음에는 국수집 여주인과 말다툼을 벌이는 줄 알고 그래도 바로 옆집이니 가서 말려야 하는 게 아닌가 하고 괜히 안절부절못했는데 시일이 지나면서 그게 한 잔 걸친 그가 여주인을 희롱하는 일종의 놀이라는 걸 간파한 뒤로는 그러려니 한다. 근래에는 어디서 또 구했는지 호통 대신 호루라기를 불어 재껴서 사람을 깜짝깜짝 놀라게 만든다.
하루는 그가 입길에 올라 국수집 여주인에게 물어봤다. 도대체 술 마시고 왜 그러는지. 돌아오는 답은,
- 그게 그리 크게 들립디까? 아이고야 미안합니데이. 모르겠어예. 장난하는 것도 아이고 참나. 그 양반, 미치갱이라요.
집도 있고 배우자도 있는 버젓한 가장이란다. 신용불량자인 탓에 그의 명의로 된 통장을 못 쓴다 뿐이지 멀쩡하고 평범한 주민인 셈이다. 더군다나 주차장 운영을 대행하면서 들어오는 현금도 솔찮아서 짭짤하다는 후문이다. 근데 국수집 여주인 얘기를 곰곰히 듣던 중에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관할 지자체 입장에서 보면 주차장 관리 대행을 맡긴 상대가 누구인지 그 신원을 철저하게 파악하는 게 후환을 미연에 방지하는 일일 게다. 예를 들어 주차장 운영과 관련해 오고가는 금전 거래가 원활하기 위해서는 당사자 계좌인지 그 여부를 확인하는 게 우선이다. 설령 개인적인 사정, 신용불량 따위,으로 인해 자기 명의로 된 계좌가 없는 처지라고 하면 대신해서 배우자 명의의 계좌를 활용하는 게 상식적이다. 그런데도 굳이 국수집 여주인한테 통사정해 여주인 계좌만 이용한다는 거였다.
- 처음에는 좀 딱해 보여서 봐줬더니만 자꾸 부탁하니까 귀찮아 죽겠어요. 그렇다고 매일 보는 사이에 나 몰라라 할 수도 없고. 처음부터 딱 선을 그었어야 했는데.
다른 것도 아니고 금전 거래야말로 한순간에 인간을 말종으로 전락시킬 파괴력이 지대해 금기시해야 할 터인데 국수집 여주인의 안 하는 것도 아니고 못 하는 것도 아닌 어정쩡한 태도는 썩 납득이 가질 않았다.
국수집 여주인한테 개략적이나마 그에 대해 듣고 난 나는 그와 말 안 섞길 잘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앞으로도 주욱 말 섞을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니 국수집 여주인과 그와의 오래됐으면서 이상한 유대감에 묘한 호기심이 일긴 하지만 이쯤에서 오지랖을 접을 작정이다. 다만, 사람 사이의 관계란 눈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닌 그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뭔가가 분명 더 있어서 눈에 보이는 것보다 더 흥미로운 구석이 무궁무진하다는 사실을 새삼 알게 해준 계기가 됐음에 만족할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