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져나오는 목소리에는 시대적 아픔이 고스란히 담겨 있으면서도 타인의 마음을 따뜻하게 보듬는 서정성으로 여전히 울림이 크다. 전율이 인다. 그 전율은 과거로의 회귀이면서 왜 진작 그에게 좀 더 귀기울이지 않았었나 하는 후회로 변주된다. 삼십여 년 전 학사주점의 다 낡아빠진 카세트에서 흘러나오던 그의 노래는 술내 진동하는 학사주점 눅눅한 분위기를 돋우는 한갓 비지엠 정도로밖에는 치부하지 않았기에 여느 닳아빠진 유행가나 다를 바 없다고 여겼었다. 고백컨대 구성진 듯하면서도 날이 선 투사를 닮은 그의 목소리가 내 폐부를 사정없이 찔러댔음에도. 그런 그에게 실은 이미 경도되었음에도 애써 외면하던 나는 시대적 미숙아였다.
어느덧 산 날보다 살 날이 짧은 나이가 되고부터 그가 부르는 노래들에 보다 더 솔직해질 수 있는 연륜이 생겨 안도한다. 더불어 그때와는 다르게 더 표나게 더 열광적으로 그를 흠모하기로 작정한다. 또 그의 노래를 들으면서 내 미숙했던 과거와 화해하고 싶다.
시인의 마을
정태춘
창문을 열고 음~ 내다봐요
저 높은 곳에 구름 한 웅큼 흘러가며
당신의 부푼 가슴으로 불어오는
맑은 한줄기 산들 바람
살며시 눈 감고 들어봐요
먼 대지 위를 달리는 사나운 말처럼
당신의 고요한 가슴으로 닥쳐오는
숨가쁜 자연의 생명의 소리
누가 내게 따뜻한 사랑 건네 주리오
내 작은 가슴을 달래 주리오
누가 내게 생명의 장단을 쳐 주리오
그 장단에 춤추게 하리오
나는 자연의 친구, 생명의 친구
상념 끊기지 않는 사색의 시인이라면 좋겠소
나는 일몰의 고갯길을 넘어가는
고행의 수도승처럼
하늘에 비낀 노을 바라보며
시인의 마을에 밤이 오는 소릴 들을 테요
우산을 접고 비 맞아봐요
하늘은 더욱 가까운 곳으로 다가와서
당신의 울적한 마음에 비 뿌리는
젖은 대기의 애틋한 우수
누가 내게 다가와서 말 건네 주리오
내 작은 손 잡아 주리오
누가 내 마음의 위안 돼 주리오
어린 시인의 벗 돼 주리오
나는 자연의 친구, 생명의 친구
상념 끊기지 않는 사색의 시인이라면 좋겠소
나는 일몰의 고갯길을 넘어 가는
고행의 수도승처럼
하늘에 비낀 노을 바라보며
시인의 마을에 밤이 오는 소릴 들을 테요
북한강에서
정태춘
저 어둔 밤하늘에 가득 덮인 먹구름이
밤새 당신 머릴 짓누르고 간 아침
나는 여기 멀리 해가 뜨는 새벽강에
홀로 나와 그 찬물에 얼굴을 씻고
서울이라는 아주 낯선 이름과
또 당신 이름과
그 텅 빈 거릴 생각하오
강가에는 안개가, 안개가 가득 피어나오
짙은 안개 속으로 새벽 강은 흐르고
나는 그 강물에 여윈 내 손을 담그고
산과 산들이 얘기하는
나무와 새들이 얘기하는
그 신비한 소릴 들으려 했소
강물 속으론 또 강물이 흐르고
내 맘속엔 또 내가 서로 부딪치며 흘러가고
강가에는 안개가, 안개가 또 가득 흘러가오
아주 우울한 나날들이 우리 곁에 오래 머물 때
우리 이젠 새벽강을 보러 떠나요
과거로 되돌아가듯 거슬러 올라가면
거기 처음처럼 신선한 새벽이 있소
흘러가도 또 오는 시간과
언제나 새로운 그 강물에 발을 담그면
강가에는 안개가 안개가 천천히 걷힐 거요
흘러가도 또 오는 시간과
언제나 새로운 그 강물에 발을 담그면
강가에는 안개가 안개가 천천히 걷힐 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