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 손님 머리를 깎고 있는데 한 여자가 문을 스윽 열고 들어온다. 머리 깎는 손님 일행인 줄 알았는데 들어와서 쭈뼛대는 게 아쉬운 소리 하려는 사람 행색이었다. 남자 커트점에 부러 들어와서 여자 머리 깎아달라는 건 아닐 테고 뭘 하자는 수작인지 의심 섞인 눈길로 바라보는데 대뜸 "일하고 싶은데 자꾸 떨어져요" 란다.
느닷없어 뜨악하다가 여자 품 안에 낯이 무척 익은 책 한 권이 눈에 들어오면서 짐작했다. 이용사 길로 투신하기로 마음먹은 뒤 맞닥뜨린 첫 관문은 필기시험. 딱 한 권으로 2주만 투자하면 이론부터 문제까지 통달해 손쉽게 합격할 수 있다는 교언에 속아 넘어가 샀던, 개정판이 나와도 여러 번 나왔을 법한데도 표지가 여전한 바로 그 책을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가보인 양 귀하게 품은 여자가 자격증 취득은 물론이거니와 살벌한 적자생존의 정글과도 같은 이 바닥에 과감하게 도전장을 내밀고 분투 중인 이른바 '신삥 원장님'으로부터 비법이 될 만한 거면 뭐든 전수받겠다는 듯 애절하게 마주서 있었다.
필기시험만 세 번 떨어졌단다. 책을, 아니 책만 열심히 팠지만 거기서 출제되는 문제는 별로 없었다고 했다. 당연하다. 그 책으로 공부한 나도 한두 문제만 더 삐끗했으면 떨어졌을 게다. 기본적인 이론과 어디서 그런 것만 모았는지 참 용하다 싶을 만치 난이도가 형편없이 낮은 기출문제로 도배를 한 책은 그야말로 입문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데 그걸 두어 번쯤 완독했다고 뻐기다간 큰코다치기 십상이다. 국가자격시험이 결코 호락호락한 게 아니니까. 사는 데가 근방이라 오며가며 들를 기회를 엿보았고 팔팔한 원장님한테 기적의 한 수를 꼭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단다. 하루라도 빨리 자격증을 따서 일하고 싶은데 필기에서부터 발목이 잡혀 마음고생이 자심하다면서.
필기는 요행히 한 번에 붙었지만 장장 1년 2개월, 4전5기만에 겨우 실기시험을 통과한 입장에서 동병상련이 일지 않으면 거짓말이겠다. 그 애타는 심정은 안 겪어본 사람은 정말 모르니까. 그렇다고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거의 없다. 필기 시험에 빈도수가 많이 나오는 문제는 이런 거라고 훈수를 두는 건 커트라인을 겨우 넘긴 내가 할 말은 아닌 것 같고, 실기는 어차피 학원 한 군데에 적을 두고 전문강사한테 전문적이고 집중적으로 배워야 하니 내가 참견할 바가 또 아니다. 그저 깎새가 되기까지 겪은 내 경험이나 주워섬기는 수밖에 없는데 문제는 그런 건 또 잘 안 들으려 한다. 여자의 표정을 보고 간파했다. 당장 그 여자가 필요로 하는 건 합격하기 위한 세부적인 방법론이지 경험담이나 직업윤리가 아니라는 걸. 그러니 열심히 하시라는 격려만 앵무새마냥 되뇔 뿐.
거창한 뭔가를 기대하고 점방에 들어왔건만 실하게 건질 게 없다고 여겼는지 여자는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종종 들르겠다며 점방 문을 막 나서려다가,
"다른 사람 쓰지 말고 저 꼭 쓰세요. 월급 싸게 받으께요. 네?"
자고로 일이란 선후가 있는 법인데 그런 제안은 자격증 딴 뒤 할 소리라 얼토당토않다. 월급 줘 가면서 일손을 부릴 만하게 점방이 번성한 것도 아니라서 막무가내로 들이대는 여자가 적잖이 부담스러웠다. 뭣보다 이런 접근은 내 스타일이 절대 아니다.
"필기시험 합격할 궁리부터 하십시오."
미지의 영역에 담대하게 임하려는 자세는 훌륭하지만 세상에 만만한 것도 없다는 경각심은 포정해우에 이르는 지혜임을 이 바닥에 투신하고부터 깨달은 바고 좌우명으로 삼은 나다. 그런 내게 그 여자는 너무 가벼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