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점방이 세든 건물 바로 옆 건물 1층에는 그 건물 주인 부부가 운영하는 카센터가 있다. 기술자인 바깥주인이 일을 도맡아 하고 안주인(여기 통장이기도 하다)이 잔일을 도와주는 식이다. 우리 건물주와는 상극이라 서로가 도외시하지만 세입자인 나는 그들 사이에서 누구 편을 드는 어리석은 짓을 할 필요는 없다. 등거리 중립외교 노선을 고수한 덕분에 카센터 바깥주인은 안 그래도 짧은 머리를 열흘에 한 번씩 박박 밀고 가 매상에 일정한 도움을 준다.
점방이 위치한 동네에 알부자가 많이 숨어 산다던데 카센터 주인 부부도 그 족속에 포함된 게 틀림없다. 대지만 쉰 평이 넘는 3층 건물의 2~3층에다 임대를 놓아 월세 따박따박 나오는 데다 동네 차 수리를 다 맡기라도 하는 양 늘 문전성시니 내 짐작이 결코 틀리지는 않을 게다. 두둑하게 가진 자들한테서 풍기는 여유만만을 그들 부부에게서도 쉽게 감지할 수 있다. 가끔 그 여유로움이 도가 지나쳐 상대를 경시하는 듯한 낌새가 없지는 않지만 말이다.
아무튼 커트점 개업 이후로 바깥주인과 열흘에 한 번은 꼭 대면하다 보니 그가 가장 관심을 가지는 것에 대해 어색하지 않게 맞장구를 칠 사이까지는 됐다. 그는 만학도다. 최근에 새벽 시간을 빌어 영어와 국어 학원을 다닌다고 했다. 영어를 잘 모르다 보니 죄다 영어인 자동차 관련 용어 앞에서 애로가 많았단다. 대학 나온 아들내미한테 이 단어는 뭐고 저 구절은 무슨 뜻이냐 묻는 것도 한두 번이라서 아예 본인이 영어를 파 보겠다고 작정하고 학원에 등록한 지가 꽤 됐다나. 귀에 착 감길 만큼 선명하지가 않아 국어학원을 다니는 이유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영어든 국어든 공부에 임하는 자세만은 대단히 열성적임에 분명하다. 어제 머리 깎으러 와서는 "뒤돌아서면 금세 까먹어"라며 쉬 진도를 빼지 못하는 공부하는 어려움을 토로했는데 그 칭얼거림조차 행복해 보여 괜스레 배가 아팠다. 이유야 어떻든 뭔가에 몰입하는 모습은 아름답다. 물론 그 뭔가가 상식에 반하는 짓이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예순을 훌쩍 넘긴 적지 않은 나이에 새로(혹은 처음으로) 국어, 영어 배워 보겠다고 새벽밥 먹는 정성이면 박수 받을 만하다.
나는 지금 학구열을 얘기하는 게 아니다. 공부 재미에 흠뻑 빠진 카센터 바깥주인에 비해 언제부터인가 손님 없는 점방 안에서 TV 화면만 멍하니 쳐다보는 게 고질이 되어 버린 내가 참 한심하다는 자괴감이 오늘 글의 핵심이다. 손님 뜸하면 점방 안에서 교과서를 펼친다는 카센터 바깥주인, 어느덧 TV 프로그램 편성표까지 꿰차 버린 나. 비교당하기 싫지만 현주소다. 주어진 여건에서 얼마나 생산적으로 구느냐가 인생을 보다 윤기나게 만드는 과정이라면 지금의 나는 분명 낙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