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다움

by 김대일

순전히 내 욕심의 발로였지만 데리고 다녀도 손이 덜 가게 아이들이 자랄 즈음 부산 이모저모를 안내해 주고 싶었다. 유행만을 좇아 구식 구축驅逐에 혈안이 된 듯한 신도심 말고 과거의 영욕이 고스란히 보존된, 도시 재개발이란 미명 하에 소멸의 그늘이 짙게 드리워져 가는 원도심을 딸들과 유람하며 부산의 어제를 되씹어 보고 오늘의 부산과 우리는 어떻게 어울릴 건지 고민하며 언제까지가 될지 모르겠지만(나는 결코 안 떠날 테지만) 부산다운 사람으로 행복하게 이 도시와 공생하기를 바라는 거창한 계획을 세웠더랬다. 글머리에서 밝혔듯 순전히 내 욕심에서 비롯된 터라 원하는 대로 이뤄지지는 않았지만서도.

아비와 밖에 나가 노는 걸 거부할 만큼 아이들이 아직 안 컸을 어느 날 여섯 살 터울이 진 두 딸을 데리고​ 해운대 신시가지에서 보수동 책방 골목으로 향하는 시내버스에 몸을 실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보수동을 기점으로 광복동과 중앙동으로 이어지는 부산의 원도심을 찬찬히 산보하면서 역사성과 현재성이 공존하는 부산의 유서깊은 장소를 두 딸에게 보여 주고 싶은 의욕이 강했더랬다. 하지만 그런 순진한 바람은 버스에 오르자마자 산산조각이 나 버렸다. 자가용이 아니고 그날따라 탑승객들로 북적대는 시내버스에서 옹송그리자니 어린 두 딸은 좀이 쑤셔 징징거렸고 그런 아이들을 도착하는 내내 달래느라 나는 이미 진이 다 빠져 버렸다(BRT(중앙버스전용차로)가 없던 시절에는 도로 사정이 심상치 않으면 근 두 시간이나 걸리는 원거리였다). 그날따라 날씨는 왜 또 그리 푹푹 찌던지 셋 다 축 늘어진 꼴을 해 구경하는 둥 마는 둥 보수동 책방 골목을 지나 부산근대역사관 앞에 당도하자 작당이라도 한 듯 두 딸은 "아빠, 집에 가면 안 돼?" 애원했다. 과거와 현재, 은근함과 역동성이 길항하듯 공존하는 부산 원도심의 매력에 흠뻑 빠지게 할 의도와는 역으로 불편하고 지루하며 별로 인상적이지 않은 부산 구석진 곳으로 오인케 하는 빌미를 제공한 건 아닌지 적잖이 불안했던 게 당시 내 심정이었다. 그렇게 십여 년이 흘렀고 해운대에서만 나고 자랐으며 돌아가는 세상 물정 대충 알 만한 나이가 되어 버린 두 딸은 서울 도심과 비교해도 전혀 꿀릴 게 없는 세련미와 야단스러움으로 치장한 전국 최대 휴양지 해운대해수욕장 주변의 스카이라인이 이 시대 도시의 전형으로 여기게 되었고 이는 그 현대성을 주도하는 서울이라는 도시에 대한 맹목적인 동경으로 귀결된다.

한 일간지 토요판에 부산 원도심 여행을 다녀온 칼럼니스트 글이 실렸다. 부산 중앙동 일대를 걸으면서 보고 먹고 느낀 것들을 쓴 일종의 기행문인데 인상적인 대목이 있어 소개한다.

시간의 흐름이 지난 곳에 사람들의 고집이 남았다. 1959년 문을 연 백구당 대표 조재붕은 아직도 새벽 2시30분에 일어나 새벽 4시에 출근한다. 맛을 일정하게 유지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분점을 내지 않는다. 맛이 일정하지 않다는 이유로 분점을 내지 않는 건 중앙모밀도 마찬가지다. 중앙모밀은 개점 이후 방송에는 나가본 적도 없다. "방송에 나오면 괜히 단골들 불편해진다"는 이유다. 중앙모밀 대표 역시 새벽부터 출근한다. 그런 성실함 때문인지 백구당의 대표 빵 크로이즌은 오전 11시면 다 나가고 중앙모밀은 주말엔 점심시간 넘어서까지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린다.

"중구와 남포동이 부산 여행 레벨3쯤 됩니다." 섭외를 하려 찾았다가 섭외는 못 하고 술만 마신 어느 술집에서 만난 옆자리 손님이 이야기해주었다. "처음 부산을 찾은 분들은 해운대에 가죠. 조금 더 다니다 보면 광안리에 가고, 더 즐길 걸 찾는 분들은 중구 남포동의 원도심으로 오죠." 이 가게를 굳이 소개하지 않는 이유도 사장님의 고집 때문이었다. 그는 내가 취재를 하러 온 걸 모르는 채 어딘가에 잠깐 언급만 되었는데도 사람이 가득해서 단골들이 불편해하더라고 말했다. 그런 말까지 듣고 굳이 섭외를 청할 수는 없었다. 엘피(LP)로 가득한 작은 술집은 그 자체로도 여유롭고 평화로워 보였다. 서울에도 한때는 있었지만 이제는 어디 갔는지 도통 알 수 없는, 가게 하나에 자신들의 고집과 신념을 심던 사람들이 아직 부산 원도심에는 있는 것 같다.(박찬용 칼럼니스트, <E 커버 스토리-부산 원도심 여행>, 한겨레, 2022.07.30. 에서)

부산사람보다 부산을 더 잘 아는 유승훈 학예사는 그의 저서에서 '부산다움'에 대해 이렇게 설파했다.

헌집을 부수고 새집을 짓는 토건의 이념은 더 이상 부산다움을 찾을 수 있는 길이 아니다. 여러 시대가 공존하고 과거 속에서 미래를 재생시키는 순환과 재생의 인문정신이야말로 진정 부산다운 부산을 창조하는 길이다.(유승훈, 『부산은 넓다』, 글항아리 에서)

내 딸들에게 부산은 과연 어떤 도시인지 함께 공감할 기회는 엔간해서는 다시 오지 않을 성 싶다. 그렇다고 실망하지는 않겠다. 비록 이 도시가 변하지 않으면 안 될 운명이고 우리는 그걸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지라도 개발되고 리모델링된 도시의 외관 밑 저 깊숙한 바닥에 도사리고 있을 웅숭깊고 불변하는 정신만은 여전할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 '부산다운 정신'을 내 식으로 형언할 수만 있다면, 하여 내 딸들과 내 외손주들에 의해 읽혀질 수만 있다면 공감의 기회는 아직 유효한 거라고 감히 말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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