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광설

by 김대일

이 손님은 오른쪽 귀에 보청기를 끼고 다닌다. 구입한 지 6개월쯤 됐다니까 올 3월 점방 오픈할 무렵 머리 깎으러 처음 왔을 때는 보청기 낀 지 얼마 안 됐을 때라는 계산이 나온다. 그때부터 그의 요구사항은 일관적이다. 옆머리는 보청기 낀 게 표가 안 나게 다듬어만 달라는 거다. 신경을 써서 바리캉을 들이댄다고 대도 깎이는 양이 많아서 요즘엔 가위로 살짝 싱글링(빗을 천천히 위쪽으로 이동하면서 머리를 자르는 방법)하는 정도에서 작업을 마친다. 뒷머리는 누가 봐도 이발한 티가 나지만 옆머리는 어째 추레해 뵈는 게 깎은 나는 영 마뜩잖은데 정작 당사자는 그만하면 됐다면서 고객 욕구를 충족시키는 충직한 깎새로 추앙하기까지 한다.

그는 산악회 활동에 열성적이라고 했다. 산악회 벼슬이란 벼슬은 두루 섭렵했다는 30년 경력의 클라이머께서 깎새와 안면도 제법 텄겠다 친근함의 표현인지 엊그제 점방에 들렀을 때는 산악회 내에서 목격되는 낯뜨거운 남녀의 애정 행각을 서슴없이 한편으로는 신나게 까발리는 게 아닌가. 무슨 얘기를 나누다 안 들어도 될 조직의 추문에까지 이르게 됐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나는 모든 전말을 다 알고 있다는 식의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중년의 금지된 로맨스를 쉼없이 발설할 때는 6개월 동안 그를 봐왔음에도 마치 오늘 처음 본 것마냥 낯설기 짝이 없는 수다의 희열감에 충만된 그를 발견하고 말았다.

그는 남녀의 불순한 짓거리를 금방 알아챌 수 있다고 떠벌였다. 눈이 맞은 남녀가 올라가라는 산꼭대기 대신 산아래 모텔로 직행한 뒤 일행들 하산하는 시간에 맞춰 집합 장소에 합류하면 산행 다녀온 이들은 후줄근한 데 비해 방사를 즐기다 온 남녀는 때깔부터 다르게 깨끔한 게 빼도 박도 못하는 증거라고 내게 힘주어 말했다. 지들끼리 요령껏 즐기면 그만일 텐데 산악회의 역사나 다름없는 그로서는 꼴같잖은 연애질에 산악회가 이용당하는 게 영 탐탁지가 않지만 그런 사례가 워낙 비일비재하다 보니 막을 엄두조차 안 난다고 끝내 실토했다. 하기사 이미 불꽃이 일 대로 인 남녀 간의 애정사에 찬물을 끼얹을 만큼 간이 배 밖으로 나온 참견쟁이를 두고 우리는 무모하다고 하지 용감하다고 하지는 않는다. 결국 그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는 고결한 도덕주의자로 남아서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조차 전혀 못 느끼는 뻔뻔한 남녀들을 씹고 뜯는 재미로 산악회 잔류의 의의를 삼은 성싶다. 쉼 없이 떠드는 그의 요설에 장단을 맞춰 주긴 했지만 좀 민망했다. 장광설長廣舌은 부끄러운 자신을 숨기는 은신처라고 고故 신영복 선생은 말씀하셨지만 그가 몸 담은 산악회 내에서 벌어지는 드러내서 좋을 것 하나 없는 뒷담화를 한 달에 한 번 찾을 동 말 동 하는 동네 깎새에게 씨불이는 게 제대로 된 처신인지는 회의적이다. 30년 역사의 산 증인이라면 그가 곧 산악회고 산악회가 곧 그일 텐데 떠들면서 즐겼을지언정 누워서 침 뱉는 격이 아니면 뭐냐고 그에게 따져 묻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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