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했더니 정호승 시인을 모르면 학과생 취급을 안 하더라구. 당시 민음사에서 나온 시선집 『서울의 예수』 는 시 좀 안다는 동기들 사이에서는 필독서로 통했다. 종교적 경건함에서 기인한 시인의 시어는 어수선했던 시대에 임해 방황하던 청춘들에게 구원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듯 따뜻했다. 시에 별로 흥미를 못 느끼던 나였지만 유독 정호승 시집만은 대충이나마 다 훑어볼 만치 딴엔 정성을 들였고 특히 <또 기다리는 편지>를 읊조릴 적마다 괜히 설레다가 막 아리기 일쑤였다. 대학 시절의 애송시로 이 시를 주저없이 고르는 배경이다.
시를 읽으면 그 '기다림'이란 단어에서 자주 울컥했다. 겨우 스무 해 남짓 산 숫보기 인생에 굴곡이 져봐야 얼마나 졌을 거며 사랑을 알면 또 얼마나 알았겠는가. 근데도 왜 사랑하기보다 기다리는 일이 더 행복했다는 구절에 두근반세근반이었던 마음이 찢어지듯 아려 오는지 원. 반백 년 산 지금 새삼 읽어보니 '기다림'이 주는 미완의 행복감을 아주 조금 이해가 가긴 하나 여전히 아린 건 어쩔 수 없다.
시집에 얽힌 에피소드 하나. 대학 4학년 무렵이었다. 1학년 때부터 2년 간 통으로 사귀던 여자와 헤어진 뒤 그 실연의 아픔으로 나머지 2년을 또 통으로 날리기 직전에 친구(누군지 전혀 기억이 없지만 아무튼)가 다른 과 2학년 여학생을 소개해줬다. 썸을 탈락말락 하려던 차에 마침 걔 생일이래서 준비했던 선물은『서울의 예수』 시집이었다. 만나기로 한 날 느닷없이 소개해 준 친구(암만 떠올려 봐도 누군지 도통 기억이 안 나지만 어쨌든)를 통해 이별을 통보한 여학생. 이별 통보라는 말이 멋쩍다. 기껏 한두 번 만나 차 마신 게 다였으니. 기분이 상했던 건 그 뒤 알게 된 여학생의 행각 때문이었다. 원래 사귀던 남자와 살짝 틀어져서 홧김에 만난 사람이 나였다나 어쨌다나. 부부도 아니면서 칼로 물을 베질 않나 둘 사이가 원상복귀되자 나란 존재는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어 버렸다. 예전 한 개그맨이 유행시킨 '두 번 죽이는 거'란 말이 떠오른다.
어쩌면 이런 같잖은 사연이 촉매제가 되어 내 '기다림'의 정서를 더 증폭시키는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