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기억한다는 것

by 김대일

"서너 번 왔으니 내 머리 스타일 대충 알겠지요?"

솔직히 모른다. 꼬박꼬박 들르는 손님인 줄은 알겠는데 그의 옆머리를 어느 선까지 깎아야 하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전에 깎았던 자국을 보고 눈대중으로 그저 짐작할 뿐이다. 살갑게 물어오는 손님한테 드나드는 이가 한둘이 아닌데 어떻게 일일이 알겠냐고 섣불리 솔직했다가는 단골 한 사람 떨어졌다고 다음 달 땅을 치고 후회해본들 아무 짝에 소용없다. 이럴 때는 염화미소가 답이다.

남들은 모르는 내 핸디캡은 건망증이다. 개업한 지 어느덧 9개월로 접어들었는데도 단골인 줄은 알겠는데 그가 커트만 하고 말 손님인지 염색까지 곁들일 손님인지 여직 가늠조차 못 한다. 커트를 끝내고 커트보를 거두면서 "샴푸하시겠어요 아니면 털어드릴까요?" 물으면 "이제 딱 보면 알 법도 한데 아직도 물어보는 거 보면 사장도 어지간하요 참." 혀를 차면서 냉큼 염색보를 씌우라고 역정을 내는 단골이 하나둘이 아니다.

불특정 다수가 찾는 점방에서 사람 이름을 못 외우는 건 흠이 아니다. 손님 이름을 물어보는 게 되레 이상하고 무례한 짓이다. 대신 얼굴을 기억해내는 것이야말로 점방의 사활이 걸린 장사치의 중요한 덕목이자 영업력이다. "지난 달 중순께 짧은 상고머리 깎아 달라고 했던 분 맞으시죠?"라고 아는 체하는 게 그 어떤 고급진 친절과 봉사 스킬보다 손님의 마음을 얻는 데 직방임을 체감 중이다. 그걸 잘 아는 녀석이 다달이 찾아주는 손님의 특징을 번번이 망각하는 게 고질적이라 치명적이다. 언제나 새로운 손님을 맞는 느낌? 이런 식이면 곤란하다. 낯이 익은 듯해서 아주 가끔 큰맘 먹고 아는 체했다가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릴 다 듣는다는 듯이 어이없어 하는 손님 시선에 몸 둘 바를 몰라 한 뒤로는 알 듯도 모를 듯도 하면 아예 아는 척을 안 해 버리고 만다. 그러니 내가 손님을 응대하는 모습은 다분히 사무적일 수밖에 없다. 사무적이라는 건 부정적인 뉘앙스다. 건조한 점방을 사랑방으로 여길 리 없으니 수틀리는 순간 미련없이 발길을 끊을 건 불 보듯 뻔하다.

살짝 불안해지기는 한다. 누군가를 기억한다는 건 상대방에 대한 최소한의 인식이자 관계를 계속 잇겠다는 열의의 다른 표현이라면 나는 혹시 손님이라는 대상을 돈벌이 수단으로만 국한시키는 근시안적 발상에 머물고 있지는 않은지 저으기 두렵다. 이래서는 정말 곤란한데.

건망증에는 3단계가 있다고 전해지고 있다. 다음은 전화벨이 울린 다음의 대사다.

1단계 : 여보세요. 거기 성말구 선생 계십니까. 본인이신가요? 예, 그런데 내가 뭐 때문에 전화를 했더라? 혹시 아시겠습니까?

2단계 : 여보세요. 저는 성억제라고 합니다. 그런데 죄송합니다만 거기 전화 받는 분이 누구신가요? 제가 누구한테 전화를 했는지 헷갈려서…

3단계 : 여보세요. 저 성말구 선생 계신가요. 예, 저요? 저는, 저는, 저는…(소리가 멀어지며) 여보! 내 이름이 뭐였지? (성석제, 「즐겁게 춤을 추다가」,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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