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인의 친일 행적이다.
- 1938년 2월 4일
<매일신보>에 산문 〈국기〉 발표, 일제에 협력 시작
- 1939년 4월-5월
'황군(皇軍) 위문 작가단' 활동
- 1942년 1월 23일
<매일신보>에 〈감격과 긴장〉발표
- 1943년 4월
조선 문인 보국회(朝鮮文人輔國會) 참가
- 1944년 1월 1~4일
<매일신보>에 〈총동원 태세로〉발표
- 1945년 3월 8일
<매일신보>에 〈전시 생활 수감〉발표
2009년 11월 대통령 직속 산하 기구인 '친일진상규명위'에서 김동인의 친일 행적을 인정하고 수록되었을 때, 그의 아들이 이의제기를 걸었다. 2010년 11월 26일 재판부는 다음과 같은 판결문을 내놨다.
- 김씨는 1944년 1월16~28일 매일신보에 ‘반도민중의 황민화-징병제 실시 수감’을 10회 연재했고, 20일 ‘일장기 물결-학병 보내는 세기의 감격’이라는 글을 발표했는데 징용을 직접적이고 자극적으로 선전 또는 선동했다. 당시 매일신보는 유일한 우리글 일간지로, 게재 횟수가 11회에 이르는 점 등을 비춰보면 김씨가 전국적 차원에서 징용을 주도적으로 선전 또는 선동한 것으로 보인다.
2011년 10월 서울고법 행정7부(재판장 곽종훈)는 김동인의 아들이 행정안전부 장관을 상대로 낸 ‘친일반민족행위 결정 취소’ 항소심에서 원심과 같이 “김동인이 일부 친일행위를 한 점이 인정된다”고 판결했다.
친일파 김동인을 기리는 문학상을 주관하는 곳은 조선일보다. 김동인의 정체를 알게 되면 '동인문학상'은 당연히 폐지되어야 마땅하나 주관사는 여전히 거액의 상금으로 친일 문인을 기리는 데 작가들을 줄 세우고 있고 수상을 거부하는 문인도 없다(예외적으로 고종석·공선옥 ·황석영은 후보 등재를 거부했다고 한다). 시민주권운동중점 회원들은 올 10월 말에 동인문학상의 정체를 시민들에게 널리 알리는 프로젝트를 결의했고 '동인문학상을 거부한 작가에게 시민들이 새로운 상을 만들어서 주면 어떨까?'라는 엉뚱한 아이디어에서 비롯된 '인동忍冬문학상'을 탄생시켰다. 동인의 역어이자 역경을 이겨낸다는 뜻이다. 하지만 올해 수상 예정자로 뽑힌 소설가는 수상 거절 의사를 밝히지 않고 11월 25일 동인문학상을 수상했다. 이에 제1회 인동문학상은 결국 '수상자 없음'으로 수상자 발표 기자회견을 했다.
2022년 12월 8일 한겨레신문에 낸 구본기 시민주권운동중점 대표의 글의 골자다.
'작가와 작품(글)은 따로 평가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한 반론은 이 글 말미에 구본기 대표의 글로 갈음하겠다. 대신, 글 파먹고 사는 쟁이들도 먹고 사는 데 유용한 기술이나 수단 하나쯤 지녀야 근심없이 본업에 전념할 게고 그로 인해 얻는 평판은 알량한 문학상 수상자라는 허명보다 훨씬 값질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예로부터 글 파먹는 작자들은 거개가 가난하다고들 했다. 문화예술 토양이 특히 척박한 우리나라니 글쟁이들은 어쩌면 고행을 사서 하는지도 모른다. 먹고 살기 빡빡하니 글쟁이들 성깔은,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대체로, 성마르고 괴팍하며 인색한 편이다. 딴에는 문호의 향기를 내뿜으며 세상 고고한 척은 혼자 다 해대지만 배 곯는 데 장사가 어디 있겠는가. 그들만의 리그나 다름없는 문학상 주변을 기웃거리다 짬짜미로 상금이나 주워먹거나 문학상 수상자 명예를 담보로 앵벌이짓에 골몰하는 건 글 파먹는 재주밖에 뾰족한 수가 없는 자의 생존 방식이지 싶다. 친일 행적이 번연한 문인을 기리는 문학상을 위상이 높다는 이유만으로 넙죽 받아먹는 짓을 서슴지 않는 것도 구린내가 좀 나긴 해도 일용할 양식으로는 그만이어서 고민하고 자시고 할 게 없어서일 수도 있다.
부자가 되라는 소리는 아니지만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을 물질적, 정신적 여유를 어느 정도는 갖추는 게 보다 알지고 농밀한 역작을 양산하는 데 밑거름이 되지 않을까 싶다. 또 그렇게만 된다면 받으면 찝찝하고 안 받으면 되게 서운할 것 같은 친일 문학상 따위에 곁눈질할 까닭도 없지 않겠나. 대세는 부캐다. 이게 아니면 다른 걸로도 먹고 살 궁리를 마련한 뒤에 글을 써봐라. 그러면 당신이나 당신의 글은 고결해지는데다 가오 빠질 일도 없을 것이다.
일부 작가들은 "작가와 작품(글)은 따로 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동인의 친일 행각과 작품성은 별개라는 거다. 고상한 헛소리다. 김동인은 글을 통해서도 친일 행각을 했다(글 쓰는 작가가 글로 친일 행각을 하지 무엇으로 하겠는가). 명제 자체도 현실과 괴리돼 있다. '작가와 작가의 생산물인 작품을 별도로 보아 작가를 키리는 상을 받을 수 있다'는 논리가 세간에 통용된다면, 우리는 히틀러를 기리는 상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상식적인 우린 그럴 수 없다. 이 지점에서 일부 작가들의 윤리적 취향 수준이 드러난다. 그들이 만약 "나는 히틀러를 기리는 상은 받을 수 없지만, 김동인을 기리는 상은 받을 수 있다"라고 말한다면, 이는 다음과 같은 고백에 불과하다. '나는 홀로코스트는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반민족·친일 행위는 별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동인문학상 대신 인동문학상! '친일파 기리기'의 즐거운 전복>, 구본기 시민주권운동중점 대표, 한겨레, 2022.12.08.에서)
<참고 자료>
- <일제에 탄압받고, '친일'하고…종잡을 수 없는 김동인의 삶>, 오마이뉴스, 2020.08.24.
- <김동인>, 나무위키
- <항소심도 "김동인, 친일행각 맞다", 한겨레, 2011.10.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