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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놈이 알지 파는 년이 어떻게 알어유

by 김대일

오래 전 TV 예능 토크쇼에서 충남 서산 출신 이영자에 의해 재현된 충청도 아낙의 수박 팔기 상술은 충청도 말투의 전형을 보여주는 듯했다. 파는 쪽이 매매에 열의가 전혀 없는 것처럼 굴어 사는 쪽이 더 안달이 나 높은 값을 치르게 만드는 고도의 술책. 에둘러 표현하는 데 능해 은유와 풍자의 진수라고 할 충청도 말투의 매력은 한번 빠지면 헤어나기 힘들다. 경향신문은 2014년 4월 11일 <충청도는 어떻게 대한민국을 웃겼나>라는 기획기사를 통해 조용조용하고 여유가 있지만 결코 속을 알 수 없으면서 이따금씩 날리는 촌철살인의 한마디가 큰 웃음을 주는 충청도 사람의 특질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나름대로 분석했다.

첫째, 충청도는 지역적으로 제주도를 제외한 대한민국 전 지역과 맞닿는다. 여러 지역과 맞닿았다는 것은 교류의 통로이기도 하지만 분쟁의 한가운데에 내몰려 있기도 했다는 것이어서 이 때문에 생존을 위해 자신의 뜻을 직접 드러내는 대신 은유적이고 에두르는 표현이 자연스럽게 발달했다는 분석이다(장덕균 작가). 직접적인 권유를 하기보다는 상대의 눈치를 살피며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는 편이다. 예를 들어 다른 지역에선 “내가 오늘 이러저러한 일이 있으니 밥을 사겠다”고 나선다면 같은 상황에서 충청도는 “워뗘? 한술 떠 볼텨?” 하고 묻는 식으로 말이다.

둘째, 자연환경이 긍정적 사고를 형성하는 데 도움을 줬다는 분석도 있다. 천안 출신 개그맨 김학래는 “충청도는 예로부터 홍수가 오고 가뭄이 와도 그럭저럭 농사가 됐기 때문에 긍정적인 정서가 깔려 있다”면서 “게다가 양반 가문이 많아 여유와 낙관적인 마음이 몸에 밴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예전에 방송됐던 <유머 1번지>의 ‘괜찮아유’는 이 같은 충청도의 낙관성을 집약해 보여준 코너다. 그릇이 깨지는 상황에서도 충청도 사람들은 ‘냅둬유~. 깨지니 그릇이지 튀어오르면 공이유~.’ 라고 대답한다면서 이런 긍정의 기질이 유머로 발현되는 것이라나.

충청도 말투에 확 꽂힌 계기는 이문구 소설가의 소설을 읽으면서다. 충청도 특유의 의뭉스러움을 배워 보려고 인상적인 구절은 메모장에다 일일이 적어뒀다. 이를테면 이런 거다.

- 이런 디서 살어두 짐작이 천리구 생각이 두바퀴란다.

- 말 안 허면 속두 웂는 중 아네.

- 촌것이라구 업신여기다가는 불개미에 빤스 벗을 중 알어라.

하지만 앵무새 되뇌듯 외워보지만 막상 내 것인 양 담아내려 하면 글맛이 영 안 산다. 달리 원조겠는가. 억양이 세고 직선적이며 말이 빠른 경상도 기질을 싹 표백한 뒤 충청도의 그것으로 주입시키지 않는 한 불가능할 게다.

유투브 알고리즘이 인도한 영상은 아주 오래된 TV 예능의 한 장면이었는데 동영상 제목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충청도 화법 원조>.

MC: 저게 뭐예요?

할머니: 집에서 키우는 청둥오리유.

MC: 할머니, 집에서 청둥오리 키우시니까 좋겠어요.

할머니: 좋긴 뭐가 좋아유? 거 좀 팔아줘유.

MC: 파시려구요?

할머니: 야.

MC: 저 청둥오리 한 마리에 얼마를 받으실 생각이예요?

할머니: 사는 놈이 알지 파는 년이 어떻게 알어유?

MC: 아, 예. 5천 원!

할머니: 냅둬유. 길가 돌아 댕기게.

MC: 7천 원!

할머니: 냅둬유. 저렇게 살다가 죽든가 살든가.

MC: 만 원!

할머니: 살 거여? 만 원에 살 거여?

MC: 만 원에 살 거냐구요?

할머니: 으잉.

MC: 돈 없어요. ​

수박이 청둥오리로 바뀌었을 뿐 이영자와 똑같은 구성이다. 대화에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사는 놈이 알지 파는 년이 어떻게 아냐'고 눙치면서 거래 상대방으로 하여금 적정가격을 제시하게 부담을 전가하는 것이고, 자기 소유물을 대상화시키는 걸 감수해서라도 낮은 가격에 대한 거부감을 부각시키는 묘수를 발휘하는 '냅둬유' 이하 언급이다. 방심한 틈에 훅 들어오는 회심의 잽이랄까. 하지만 연거푸 당하는 펀치인데도 이 삽상한 기분은 뭐지?

부면장은 하던 말을 계속했다.

"그런디 교육에 들어가기 전에 지가 특별히 부탁을 드리겄습니다. 제발 퇴비 좀 부지런히 해달라 이겝니다. 워떤 동네를 가볼래두 장터만 벗어났다 허면, 질바닥으 풀에 걸려 댕길 수가 웂는 실정이더라 이 얘깁니다. 아마 여러분들두 느끼셨을 중 알고 있습니다마는, 풀에 갬겨서 자즌거가 안 나가구 오도바이가 뒤루 가는 헹편이더라 이겝니다. 풀 벼서 남 줘유? 퇴비허면 누구 농사가 잘 되느냐 이 얘깁니다. 식전 저녁으루 두 짐쓱만 벼유. 그런디 저기, 저 구석은 뭣 땜이 일어났다 앉었다 허메 방정 떠는겨? 왜 왔다리갔다리 허구 떠드는 겨? 꼭 젊은 사람들이 말을 안 탄단 말이여. 야 - 저런 싸가지 웂는 늠으 색긔… 야늠아, 말이 말 같잖여? 너만 덥네? 저늠으 색긔…즤애비는 저기 즘잖게 앉어 있는디 자식은 저 지랄을 혀. 이중에는 동기간이나 당내간은 물론이구 한 집에서 둣씩 싯씩 부자지간이 교육을 받으러 나오신 분두 즉잖은 줄로 알구 있습니다마는, 웬제구 볼 것 같으면 아버지나 윗으른은 즘잖게 시키는 대루 들으시는디, 그 자제들은 당최 말을 안 타구 속을 쎅이더라 이겝니다. 교육중에 자리 이사 댕기구, 간첩모냥 쑥떡거리구…야늠아, 너 시방 워디서 담배 피는겨? 너는 또 워디 가네? 저늠의 색긔들…그래두 안 꺼? 건방진 늠 같으니라구. 너 깨금말 양시환씨 아들이지? 올봄에 고등핵교 졸읍헌 늠 아녀? 너지? 건방머리 시여터진 늠 같으니라구."

부면장이 한바탕 들었다놓은 뒤에야 겨우 뭘 좀 하는 곳 같아졌다. (이문구, 「우리동네 김씨」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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