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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침

by 김대일

밭은 기침이 쉬 잦아지질 않아 걱정이다. 가래까지 그렁그렁해 한동안 이중으로 고생이었다가 그제 비로소 처방받은 약 기운 덕인지 가래는 한시름 덜었다. 몇 주 전 목감기가 심했던 막내딸이 병원에서 타온 약이 남아 있어서 그걸로 대충 다스리려고 했는데 효과가 전혀 없었다. 전철 간이나 문을 닫은 불 끈 방 안 따위 사방이 막힌 공간에서 유독 심하게 도지는 기침이다. 벌레가 목울대 아래위를 스멀스멀 기어가는 기분이 들 때면 어김없이 밭은 기침이 쉴 새 없이 터지다가 거기서 벗어나야 덜했다. 목소리가 안 나올 만치 목구멍이 부어 있는 건 아니지만 아침저녁으로 목이 쉽게 잠기는 건 영 언짢다. 무엇보다 너무 오래 가는 기침에 예민해진다. 전에 앓았던 목감기는 잘 다스리기만 하면 길어야 사나흘이었는데 한 달이 다 돼간다는 마누라 말은 과장되지만 멈출 기미가 안 보이니 불안하다.

그제 쉬는 날 근처 내과를 찾았다. 문진하던 의사가 코로나19 감염 여부를 먼저 물었다. 걸린 적 없고 3차까지 예방접종을 맞았다고 대답했다. 증상을 더 정밀하게 보려는지 자기 앞으로 다가서게 해서 입 안을 살피려나 싶어 마스크를 벗으려니까 날카롭게 변한 목소리로 제지했다.

"마스크 벗지 마세요!"

금지된 장난을 하다 걸린 아이처럼 화들짝 놀라 마스크에서 손을 얼른 뗐다. 체온계를 귀에다 들이밀고 나더니 뒤돌아 앉게 해 등에다 청진기를 갖다 대며 불온한 소리가 나는지를 확인했다. 그러고선 증상에 관한 설명은 일절 생락한 채 처방해 주는 약을 먹고 며칠 경과를 지켜보자고만 했다. 의사의 행동거지로 미루어 보건대 특이한 이상이 없어 염려할 바는 아닌 것으로 받아들이면서도 왠지 기계적으로 비치는 미흡한 대응에 한편으로 미심쩍은 구석이 없지 않았다. 아니나다를까 시럽으로 된 기침 멎는 약은 처방에서 빼주십사 요청을 했더니,

"넣을 건데요."

한 마디로 정리해 버렸다. 막내딸이 먹다 남긴 기침 멎는 시럽약을 먹어봤더니 별 효과를 못 느껴서였는데 처방이란 고유 영역을 침범하려 드는 데 대한 응징이 묵살로 구현되는 바람에 진료실 공기가 일순 어색해져서 말없이 퇴장하고 마는 나다. 주사를 한 대 맞고 시럽 기침 멎는 약을 포함해 사흘치 약을 받아 먹고 있는 중이다.

가래는 사그라들었지만 목울대가 스멀거리는 기분은 여전하다. 어제 새벽, 자는 도중에 연신 밭은 기침을 해대는 나를 직감하고서 불현듯 정체 모를 불안이 밀려왔다. 말이 쉬워 불치, 난치지 중병을 앓는 당사자는 어떤 심경일까. 그들처럼 죽음의 문턱 앞에까지 떠밀렸다면 나는 평소와 같이 오연할 수 있을까. 냉랭한 새벽 공기를 가르는 탁한 기침 소리가 이토록 두렵게 옥죄기는 처음이다. 늙어간다는 증거겠지. 몸도 마음도 갈수록 약해지는 걸 절감한다. 그러니 이 기침이 그냥 기침이길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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