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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는 일요일(91)

by 김대일

​경청​

정현종


불행의 대부분은

경청할 줄 몰라서 그렇게 되는 듯.

비극의 대부분은

경청하지 않아서 그렇게 되는 듯.

아, 오늘처럼

경청이 필요한 때는 없는 듯.

대통령이든 신이든

어른이든 애이든

아저씨든 아줌마든

무슨 소리이든지 간에

내 안팎의 소리를 경청할 줄 알면

세상이 조금은 좋아질 듯.

모든 귀가 막혀 있어

우리의 행성은 캄캄하고

기가 막혀

죽어가고 있는 듯.

그게 무슨 소리이든지 간에,

제 이를 닦는 소리라고 하더라도,

그걸 경청할 때

지평선과 우주를 관통하는

한 고요 속에

세계는 행여나

한 송이 꽃 필 듯.​

(확실히 듣는 게 말하는 것보다 어렵다. 씨월거리고 나면 속은 시원할지 모르겠으나 밀려드는 허탈을 감당해내는 건 벅차다. 듣겠다고 마음먹을라치면 말할 때보다 몇 곱절의 인내가 필요하지만 다 듣고 나면 승기를 잡은 양 대화의 우위를 점한다.

시의 서두가 강렬하다. 불행은 경청할 줄 몰라서, 비극은 경청하지 않아서. 하지만 퇴근하는 전철 간에서 태극기 문양이 선명한 배지를 꽂은 노인네가 이어폰을 안 꽂은 채 틀어놓은 편파적인 정치 동영상 유투브를 듣는 건 정말이지 고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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