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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업 1주년

by 김대일

3월 19일은 개업한 지 1년이 되는 날이었다. 시간이 쏜살같다더니 1년이 후딱 지나갔다. 다행히 지난 1년은 무탈했다. 호주머니 헐겁긴 1년 전이나 매한가지지만 갈피 못 잡고 제멋대로 굴러다니던 것들이 하나씩 제자리를 찾아가는 듯한 안정감이 대신 든든하다. 이렇게 뿌리를 박아 1년이 5년 되고 5년이 10년, 20년, 30년…, 지난 30년이 잃어버린 시절이었다면 앞으로 30년을 독하게 도모해 벌충을 해보려는 나에게 이 점방이야말로 전초기지 겸 교두보로 그 의미가 무척 깊다. 하루를 마감하는 전원 버튼을 내릴 적마다 더 이상 헤매지 말자며 다짐하고 또 다짐하는 건 차라리 신성한 의식이다.

거의 10년 전인 2014년 2월. 귀신이 씌었는지 팔자에도 없는 술장사를 했다. 부산 민락동 포구 한 켠에 밀집해 있던 포장마차촌의 점방 하나를 인수해 장어, 가리비 따위를 구워 주며 자리값 받고 술도 팔았다. 산전수전에 공중전까지 빠삭한 빠꼼이 이모들 틈바구니에서 병신이 육갑 떨고 자빠졌다는 뒷담화보다 더 괴로웠던 건 마치 외계에 홀로 떨어져 명맥이나 겨우 부지하는 듯한 심한 고립감이었다. 악조건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파산은 겨우 면했다지만 매달 어김없이 메워야 하는 개인회생 변제금 85만 원은 뒤척일수록 옥죄는 올무와도 같았다. 차포를 다 떼고 남은 알량한 푼돈은 주는 손이 되레 무안할 정도여서 가족들 앞에서 장사하는 티도 못 낼 지경이었다. 텃새 심한 포구에서 술장사하는 신세란 싫어도 받아마셔야 하는 술처럼 피동적일 수밖에 없어 늘 주눅들어 있었다. 바닷가와 바로 면한데다 지대까지 낮은 데서 골조랄 것 없이 천막만 둘러치고 점방 행세를 하는 포장마차라 여름에는 물이 차고 겨울에는 세찬 해풍이 천막을 뚫고 가뜩이나 시린 사람 속을 도려냈다. 일 년에 한 번씩 날아오는 무단 점유 고발장을 들고 경찰서로 가 조사를 받고서 세금처럼 벌금을 납부해야 했고 바로 옆 넓은 공터에 아파트 들어선다는 소문이 돌 때면 언제 뜯겨져 나갈지 몰라 노심초사했다.

잃은 것도 없지만 얻은 것도 별로 없이 2년 가까이 운영하던 포장마차를 접으면서 결심했다. 다시 장사를 한다면 술장사만은 결코 아니 하겠다고. 정식으로 낸 사업자등록증을 액자에 담아 남들 눈에 가장 잘 보이는 곳에다 비치한 번듯한 점방에서 장사를 하겠다고. 초짜 취급은 받을지언정 무지렁이 소리는 안 들을 기술 하나쯤 익힌 다음에야 장사다운 장사를 하겠다고.

지난 1년과 10년 전 1년을 비교하면 격세지감이다. 10년 전 민락동 포장마차에 비하면 모든 게 순조롭고 평화롭다. 하지만 10년 전에 악전고투했던 덕분에 지금의 호사를 누릴 수 있었으니 그 시절이 꼭 지워버리고 싶은 흑역사만은 아닐지니. 치이고 까이면서 단단해졌을 나의 새롭지만 굳센 내일을 위해 외쳐 본다. '브라보, 개업 1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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