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퇴근하러 부산 2호선 전철을 타면 꼭 4-3 칸만 고집한다. 이유는 없다. 그냥 습관이다. 출근길 도착지인 개금역에 내려 한 발짝이라도 빨리 점방으로 향하자면 뒤칸으로 탈수록 낫지만(진행 방향 뒤쪽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하면 나갈 출구가 더 가까워서) 어정쩡하게 중간 칸에 타야 괜스레 편하다. 굳이 이점을 찾자면 한 가지 있긴 하다. 중간 칸이라 승객들이 덜 몰린다는 것.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출근 전철 간에서 누군가를 자꾸 의식하게 된다. 목적지인 개금역 바로 전 역인 동의대역에서부터다. 전철이 그 역에 정차하면 중로의 남자가 어김없이 4-3 칸을 탄다. 마스크를 써서 용모파기가 용이하지 않지만 땅딸막한 체격에 작취미성昨醉未醒인 양 늘상 불그뎅뎅한 안색에 양가로 찢어진 눈매가 매사 반지빠른 처신을 대변하듯 눈에 띄지만 로맨스그레이의 기풍과는 거리가 한참 멀어 보이는 인상이다. 전철에 오르자마자 이 양반이 맨 처음 하는 행동이 있다. 누굴 찾는지 두리번거리는데 그게 바로 나다. 내가 다음 역인 개금역에 내릴 걸 그 시각 같은 전철 칸을 탄 승객 중에 유일하게 눈치를 챈 사람. 남이 모르는 정보를 손에 쥔 사람은 선제적이라 유리하다. 출근길 내 지정석이나 다름없는 4-3 칸 가장자리로 걸어와서 내 무릎에 닿을 만치 바싹 다가서서는 창공을 유유히 날다 창졸간에 지상으로 낙하해 먹이를 낚아채는 맹금류처럼 내가 일어서는 기척을 내면 얼른 엉덩이를 들이밀고 앉아 버린다. 때때로 다른 빈 자리에 잠시 앉았다가도 내가 일어서면 후다닥 내 자리로 달려 든다.
맡아놓은 사적인 물건이 아니니 내 것 네 것 따질 계제가 아닌데도 그의 행동은 눈에 거슬리면서 괜히 얄밉다. 붐비는 아침 출근길 누구는 앉고 싶어도 자리를 못 찾아 서서 가는 판인데 누구는 맡겨 둔 걸 돌려받듯 고생 안 할 요행수를 쥐고 흔드는 게 불공평하고 불공정해 보여서다. 불로소득이 따로 없다. 이럴 때 쓰는 표현이 기울어진 운동장이던가.
하여 기울어진 걸 평평하게 바로잡고자 결단했다. 그토록 최애하던 4-3칸을 포기하고 다음 칸인 5-3으로 이주하기로 작정했고 그제부터 실행에 옮겼다. 확실히 뒤칸일수록 승객들이 몰려 혼잡스럽긴 하다. 하지만 늘 그 자리에 앉았을 내가 안 보여 당황해하는 그 양반 면상을 상상하면 고것 참 쌤통이라며 고소하기 그지없다. 그 맛이 참으로 별미라고 탄복하면서 말이다. 그 양반도 아침 출근길 고생해봐야 한다.
이게 내가 얼마나 옹졸한 인간인지 보여주는 단면이다. 별 걸 다 글감이라고 쓰고 자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