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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 다루는 요령

by 김대일

뻗치는 머리라서 높고 짧게 깎아달라고 주문한 손님이었다. 흔히 장교머리라고 불리는 높은 상고가 적당하겠다 싶어 열심히 깎아댔다. 가이드라인이라고 부르는 머리선은 통상 U자 라인이다. 옆머리 높이에 따라서 뒷머리 선이 오르락내리락하는데 그 높이는 손님 두상을 보고 깎새가 판단한다.

무난하게 깎는 중이었다. 뒷머리 숱이 무성한 걸 쳐내는 빗 놀림이 위에서 춤을 추는 듯한 느낌이 들 수야 있겠지만 두상에 안 맞게 가이드라인을 치켜올릴 저열한 기량은 이젠 아니다. 그런데 너무 높이 깎는 거 아니냐는 짜증이 묻어나는 손님 목소리가 별안간 점방 공기를 가르자 빈정이 상한 깎새다. 뒤통수에 눈이 안 달린 이상 높이 깎는지 낮게 깎는지는 닿는 빗의 촉감으로 짐작할 뿐인데 다시 말하지만 적정선을 지키는 중이었다.

낯이 설어 처음 들른 손님인 줄은 진작에 파악했지만 머리를 맡긴 깎새를 못 미더워하는 게 역력한 행상머리에 배알이 꼴린 나머지 "적당하게 깎는 중인데요" 퉁명스레 대답하면서 더 이상의 교감을 불허하는 차단벽을 치려 하자 거울 속에 비친 손님 표정으로 미루어 심기가 영 불편한 눈치였다. 이런 유형의 손님은 깎새 앞에서 점잖은 척은 하지만 한번 낙인을 찍었으면 발걸음을 다시 할 위인이 절대 아니다. 처음이자 마지막 인연이라 퉁치면 그만일 테지만 장사하는 사람 입장에서 그건 또 아니라서 작업하는 내내 다음 처신을 어떻게 해야 할지 심각하게 숙고했다.

선택은 두 가지로 좁혀졌다. 오늘 보고 아니 보겠다 다짐했으면 손님이 퇴장할 때까지 새침하게 굴기, 그게 아니라면 손님 한 사람이 아쉬운 판국에 빌어먹을 자존심일랑 집어치우고 재방문율을 제고하기 위한 태세로 전환하느냐. 어떻게 했을 것 같은가.

깎새만큼이나 손님이 느끼는 깎새의 첫인상도 별로인 건 확실하다. 그 첫인상을 호감으로 바꿀 방법은 커트점에 한해서는 머리를 가지고 푸는 방법밖에 없다. 뻗치는 머리는 깎을 만큼 깍았는데도 한번에 'OK!' 사인을 받아본 적이 없다. 각이 졌으니 두루뭉술하게 다시 고쳐 달라는 요구가 안 들어오면 오히려 서운하다. 머리카락이 안 자라는 게 아니니 하루이틀이면 또 삐져나올갑세 커트점에서만이라도 그 놈의 뻗치는 걸 모조리 잡고 싶은 심정은 아는 사람만 아는 뻗치는 머리의 애환이다. 그걸 잘 아는 깎새가 선수를 치기로 했다.

- 원하는 대로 다 해드릴 테니 말씀만 해 주세요.

- ?

- 선생님 머리 스타일을 가진 손님들 스트레스를 잘 압니다. 암만 잘 깎아도 튀어나온 것 같고 그게 또 그렇게 스트레스라는 걸 말입니다. 그러니 기탄없이 말씀해 주세요. 원하는 대로 깎아드릴 테니.

- 아, 예. 여긴 오늘 처음이라. 원래는 가던 데가 있는데. 제 스타일을 잘 모르시니 뒷머리도 높이 깎은 것 같고.

- (뒷거울을 들어 뒤통수를 보여주며)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그다지 높지 않습니다. 뒷머리를 정리하느라 빗놀림이 올라가는 느낌이 들어 그렇지 가이드라인을 높이지는 않았어요. 한번 보세요.

- 아, 그렇네요.

- 다음에 오시더라도 마음에 안 드시면 주저없이 말씀하세요. 이왕 여기까지 발걸음하셨는데 선생님이 원하는 대로 깎아드려야 되지 않겠어요? 다른 손님이 대기하고 있으면 좀 곤란하지만 오늘처럼 널널하면야 무슨 짓이든 못하겠습니까?

둘 사이의 공기가 한결 부드러워졌다. 제법이다 손님 다루는 요령이. 두고보자. 이 손님 다음에 다시 찾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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