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사는 ROTC 후배가 다음 주 휴가차 부산엘 들를 테니 시간 맞는 사람들끼리 식사나 하자며 단톡방에 근황을 올렸다. 오랜만에 귀국하는 터라 제법 많은 이들이 동조했다. 나한테는 그림의 떡이었다. 다른 이들이 들으면 불편하겠지만 그 녀석만은 꼭 만나고 싶었는데 아쉽게 됐다. 그걸 취재 차원이라고 하면 너무 거창하지만 주변 지인 중에 유일하게 유명짜한 인물을 만나 녹록지 않았던 뮤지컬 배우 이력을 직접 들을 수 있다면 무척이나 흥미로운 장면이다. 그의 대표작은 <라이언 킹>의 무파사 역이다.
<신성한, 이혼>이라는 드라마에 등장하는 어떤 배우는 전부터 묘한 매력을 풍겼다. 연기를 하는 게 아니고 실생활을 고스란히 드러내듯 자연스러운 리얼리티를 구축한 그 배우는 부산 말투로도 정확성과 유창성을 겸비한 발음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옷 소매 붉은 끝동>에서 혜경궁 홍씨로, <군 검사 도베르만>에서 형사 고모로 등장했었다.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가 그 배우의 대표작으로 거기서 주인공인 이찬실을 맡은 강말금이다. 배우의 필모그래피를 훑어보던 중에, 깜짝 놀랐다. 이 배우에게 꽂힐 수밖에 없는 운명적 끌림 같은 걸 발견해서다. 서울 말투로 애써 감춰도 삐져나올 수밖에 없는 부산 말투가 그의 출신지를 진작에 짐작하고도 남음이었지만 비록 나이차가 나긴 해도 내가 나온 대학교, 학과가 똑같은, 말하자면 직속 후배라는 사실에 전율했고 기분이 묘했다. 선망하는 배우가 같은 교정을 활보했고 같은 인문대 강의실을 썼으며 같은 교수 밑에서 같은 교재로 공부했다는 사실에 동질감을 뛰어넘어 자부심이 격하게 밀려왔다.
뮤지컬 배우인 후배도 마찬가지리라. 두 해 밑이라 직접 부대낀 적은 없지만 전역 후 사석에서 만났을 때 같은 대학교에서 장교라는 같은 길을 걸었던 이들만이 느끼는 끈끈한 동질감뿐만 아니라 당시 배우라는 새로운 도전장을 내민 후배에게 전했던 진심어린 격려가 그를 고무시켜 지금의 그로 자리매김하게 보탠 작은 힘이 되었을지 모른다는 자부심이 나를 흥분시키기에 충분하다.
자기 몫을 충분히 해내고도 남을 중견의 자리에 우뚝 선 배우들이 부산 하꼬방만 한 커트점 깎새와 한 다리 건너면 아는 사이로 동시대를 산다는 사실에 가슴 벅차다. 별다를 거 없는 내 일상이 그들이 배우로서 달릴 성공 가도를 보는 낙으로 충만해진다면 그것보다 유쾌한 게 없을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