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톱 밑에 머리카락이 박히면 머리끝이 쭈뼛쭈뼛 솟는 것 같다. 안 겪어본 사람은 절대 모르는 그악한 고통이다. 뼈다귀가 목구멍에 걸린 호랑이 처지는 동화책에서나 읽어봤지만 눈에 보일락 말락 하는 터럭이 손톱 밑에 박혀 눈물 쏙 빠지는 게 비일비재한 사람이 세상천지에 몇 명이나 될까. 남들은 평생을 살아도 한번 겪을까 말까 하는 사건이 내게는 심심찮은 다반사이고 보면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기인 소개 프로그램에 등장해도 손색이 없을, 바야흐로 희귀 인간군에 진입한 셈인가.
칼, 가위 따위 날 선 것들을 가까이서 다루다 보니 응급처치용 약품을 점방에 상비하는 것도 모자라 들고 다니는 가방에까지 챙겨 둔다. 날이 시퍼렇게 선 가위나 면도날에 슬쩍 스치기만 해도 대번에 선홍빛 피가 새어 나온다. 급히 반창고테이프로 처치하고 한참 지나 지혈이 됐을 줄 알고 까보면 새로 베인 듯 피로 흥건해져 당황스럽다. 피가 잘 안 멎는 게 자연스러운 노화 현상이라면 어쩔 수 없는 노릇이지만 송골송골 맺히는 핏방울이 내 몸인데 내가 제어하지 못하는 서글픔인 양 처연하다. 집이나 점방이면 상처 부위에 다시 반창고테이프를 붙이면 그만이지만 출타 중에 피를 보이는 건 영 모양이 빠져서 반창고테이프 여분이 가방에 항시 대기 중이다.
가위질 담당하는 오른손은 말쑥한데 빗을 쥐는 왼손은 상처투성이다. 가위, 칼을 잡은 오른손이야 제 할 일 하느라 바쁘지만 거드는 왼손은 오른손이 살짝만 방심해도 이리 베이고 저리 찢긴다. 조수라서 궂은 일 도맡아 하는 건 숙명이긴 하나 어째 불공평하다. 그런데 엊그제는 두 손이 다 사달이 났다. 단골 손님과 이바구하다 정신줄을 잠깐 놓친 사이 가윗날이 왼손 중지를 스윽 물었다. 어김없이 피가 철철 흘러 넘쳤다. 얼른 반창고테이프를 붙이고 작업을 이어가던 중에 이번에는 오른손 중지 손톱 밑에 아주 미세한 머리털이 박혀 아리고 쓰렸다. 바로 뽑아야 직성이 풀리건만 채 끝나지 않은 커트 때문에 히스테리 발작하듯 감질이 나서 혼났다. 마음 겨우 추슬러 작업을 끝내자마자 족집게, 바늘, 칼 온갖 것들을 다 동원해 박힌 이물을 없애려고 용을 썼지만 쉬 빠지지 않았다. 가까스로 박힌 털을 뽑고 나니 새 손님이 입장했다. 머리카락을 빗으로 치켜올려 왼손 중지와 검지 사이에 끼우고 깎는 지간깎기를 하던 도중에 반창고테이프를 붙인 중지에다 대고 또 가위질을 해댔다. 새 반창고테이프를 붙이려고 까보니 아니나다를까 핏방울이 흥건하게 맺힌다. 상처 난 데에 숫제 소금을 끼얹는 이 어처구니없는 자해는 흔한 일이 아니다.
가악중에 서슬 퍼런 가윗날에 베었을 때 섬뜩함, 내 것이면 밉지나 않지 듣보잡 터럭이 손톱 안을 비집고 들어와 박혔을 때 께름칙한 이물감이 사람을 불편하게 만든다. 그럼에도 컴퓨터 모니터만 주야장천 주시하다 거북목이 되는 사무원마냥 깎새의 세계에도 직업병이 없을 리 없어서 그러려니 체념하고 살밖에. 터럭으로 먹고 살 팔자면서 터럭 때문에 생긴 직업병에 예민한 게 좀 멋쩍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