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로서 쪽팔린다

by 김대일

지난 2일 핀란드 총선 결과를 전한 국내 한 언론의 기사 제목을 문제 삼은 칼럼이 눈에 띄었다. 칼럼을 쓴 이는 한겨레신문 베를린 특파원(노지원)이었고 그녀가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다고 지적한 국내 언론 기사 제목은 <"광란의 술 파티' 독배 될 줄이야"…30대 여총리 핀란드 총선서 완패>였다.

칼럼은 기사 제목이 왜 사실이 아닌지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하는 내용이었는데 우선 선거 승패가 갈린 건 핵심 쟁점인 경제 때문이지 산나 마린 총리의 술 파티 때문이 아니라고 분석했다. 지난해 8월 마린 총리가 파티에서 술을 마시고 춤추는 영상이 유출된 뒤 총리의 행실을 문제 삼는 '엄숙주의적 비난'이 쏟아지자 지지자들이 되레 결집했다고 전했다. 당시 수많은 핀란드 여성들이 자신의 춤·파티 영상을 에스엔에스(SNS) 등에 올리며 마린 총리와 연대한다는 해시태그(#)를 달았다고 한다.

마린 총리와 사민당이 선거에서 패하긴 했지만 '완패'라 보기 어려운 총선 결과라고도 덧붙였다. 사민당 득표율은 19.9%로, 국민연합당 20.8%, 핀란드인당 20.1%에 이어 3위에 그쳤지만, 지난 총선(17.7%) 때보다 득표율이 오르고 의석수도 3석 늘었다. 마린 총리는 "비록 오늘 1등은 못 했지만 정말 좋은 결과"라고 평했다. 마린 총리는 임기 4년 동안 코로나19 대유행을 신속·단호하게 관리했고, 러시아의 위협이 고조되는 가운데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가입을 빠르게 추진했다. 엄마와 아빠에게 동일한 육아휴직을 제공하는 등 제도 개선에도 앞장섰다고 총리의 선정을 나열했다.

파티 동영상 논란이 나자 '왜 총선을 앞두고 자리를 잃을 수 있는 행동을 했나', '왜 친구들이 영상을 찍도록 내버려 뒀나'는 쪽으로 초점을 맞추자 마린 총리는 "저는 사람입니다. 이 어두운 시기에 저에게도 기쁨과 빛, 재미가 필요합니다. 여기에 여러분이 보고 싶지 않은 모든 종류의 사진과 동영상이 끼어 들었지만, 이 역시 삶입니다. 저는 단 하루도 일이나 업무를 놓친 적이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라고 밝혔다.

상황이 이런데도 적지 않은 한국 언론이 선거 결과를 '술 파티'와 연결시켰고, 일부는 마린 총리가 여성임을 강조하는 제목을 달았는데 칼럼 필자는 이 언론사가 앞으로 남성 총리 기사에 '남총리'라는 표현을 쓸지 유심히 지켜볼 것이라 별렀다. 또 사실과 동떨어진 제목의 기사를 내는 이유가 지구 반대편 북유럽 국가의 정치·사회 상황에 무지했거나, 다른 언론을 따라 한 것일 수 있다면서 무능하거나 무책임하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는 속내를 드러냈다(<특파원 칼럼-'술 파티' 핀란드 여총리의 총선 패배? 무능하거나 무책임하거나!>, 한겨레, 2023.04.07. 발췌)

문제의 기사 제목을 검색해 읽어봤다. 매일경제신문이라는 언론사 기자가 쓴 기사였다. 기사는 'AFP통신 보도에 따르면'이라고 명기해 다른 언론 보도 자료에 기대 작성했음을 자백한 셈이고 총리의 긍정, 부정 평가를 대비시키면서 부정 평가 중에서도 특히 '술 파티'를 부각시켜 실각의 결정적인 원인인 양 뉘앙스를 풍겼다. 해당 기사를 쓴 기자의 이름만 보면 남자임에 분명했다. 무슨 의도로 그런 기사 제목을 땄는지 모르겠으나 다른 언론 보도 자료를 거의 그대로 베끼는 데 급급한 것도 모자라 핀란드 총선 결과에 대해 기자다운 날카로운 분석은커녕 젊고 영특한 여자 총리의 실각에 쌤통이라며 고소해하는 '못난 놈'의 심술을 요령껏 드러내려는 수작 같아 추해 보였다. 남자인 내가 다 쪽팔렸다.


https://m.hani.co.kr/arti/opinion/column/1086855.html#cb


https://m.mk.co.kr/amp/10702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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