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머리를 깎아 주는 단골 커트점 여자 원장이 얘기 중에 남들 쉬는 날 못 쉬니 친구 만나기가 여의치 않아 외롭겠다고 위로를 건넸다. 나이 들면 친구 만나러 여자는 밖으로 나돌아다니지만 남자는 집구석에만 틀어박혀 지내기 일쑤라면서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후속편을 쓰고 앉았으면서 말이다. 늙을수록 일부러라도 사람들 만나 자주 부대껴야 적적한 게 덜하고 생기가 돋는 법이라고 위로가 설교조로 급변한 그니는 왜 쉬는 일요일마다 부재중인지 그 까닭을 밝힌 셈이다. 집, 점방, 집인 판에 박힌 일상이 무료해 가끔 외딴섬으로 쫓겨가 귀양살이를 하는 듯한 기분이 드는 걸 보면 여자 원장이 내린 진단이 일리가 아주 없지는 않은 모양이다. 다만, 이전보다 운신의 폭을 넓혀줄 재량, 예를 들어 시간이나 금전적 여유가 충만해진다손 과연 고립감을 상쇄해보겠다면서 그니처럼 사람 찾아 삼만 리에 고부라질 열정이 끓어오르겠느냐면 그건 좀 무리지 싶다.
형편에 습성이 길들여진 측면이 크지만 삼사 년 전부터 내가 아쉽다고 내 쪽에서 먼저 사람을 찾아 다니지는 않는다. 다들 어슷비슷할 터이다. 소싯적에야 밥 안 먹고는 살아도 친구 없이는 못 산다고 엄부럭깨나 떨었겠지만 들떴던 청춘의 기운이 한 풀 꺾인 중년기로 접어들면서부터 줄기차게 이어지는 사람들과 왕래가 꼭 절실한 일인가 하는 의문이 들면서 당연히 있어야 할 것을 잃어버린 상대적 박탈감이나 소외감 따위가 부질없는 것으로 여겨졌다. 이런 마음이 틀로 굳어지자 사람은 안 보이고 실속 없는 행사치레로 시끌벅적한 동문회니 친목회는 아예 거들떠도 아니 보고 기계적인 무릎맞춤 끝에 겨우 만날 날을 잡는 약속조차 궁벽한 가세를 핑계대고 고사하기 일쑤다. 물론 오랫동안 알던 사이라고 해도 이 나이대쯤 되면 만남의 대상으로 어울리는 격이냐 아니냐를 은연중에 따지기 마련이라서 황새 따라가다 가랑이 찢어지는 뱁새 꼴 안 당하려고 이쪽에서 미리 알아서 기는 태세가 아니라곤 못하겠다. 그보다는 요식행위인 양 감흥 없는 만남을 태연하게 이어갈수록 더해지는 갑갑증이 더는 불감당이라 제 명 대로 살고 싶어서 마음 안 움직이는 관계는 싹 청산하기로 강다짐하고서 걸러내는 중이라는 게 더 솔직한 답변이겠다. 이왕 만날 거면 이리 재고 저리 따지면서 도모하는 대신 우연에서 비롯된 즉흥적 조우는 어떨까. 극적이어서 더 인상적이지 않을까. 돌발적이라는 건 계획적이지 않다는 것이고 계획적이지 않다는 건 타산적이지 않다는 의미니 훨씬 소탈하게 다가오지 않나.
집은 일산이고 회사는 서울 여의도인 박가는 내가 개업을 준비하던 1년여 전부터 부산 내려가겠노라 노래를 불렀다. 특히 술기운이 알딸딸하게 오르면 전화통 붙들고 앉아 '하나뿐인 내 친구' 타령을 연발하는, 개 버릇 남 못 주는 고약한 주정이다. 어떨 땐 다음날 당장이라도 내려올 듯 법석을 떨어대지만 이름 대면 알 만한 투자증권회사 이사로 공사다망하신 양반이 고향 친구 보고싶다고 휴가계 내는 것도 영 체신머리 없어 보여서 술 깬 다음날 식언을 사과하는 목소리가 쥐구멍을 찾는 듯 기어들어가도 그러려니 넘어간다. 하여 나는 기다리지 않는다. 점방 문을 열고 '드디어 내가 왔다!' 귓구멍이 떠나가게 도착 신고를 하지 않는 한 십수 년 쌓인 회포를 밤새 풀거나 새삼 돈독해진 우정의 징표로 높이 든 잔을 치는 감격스러운 장면을 공상하며 시간을 낭비하지 않기로 마음 먹은 지 오래다. 대신 돌발적이어서 더 극적일 기약없는 조우에 대한 기대를 집에서 싸온 맛난 도시락 까먹을 기대로 기분이 좋은 사소한 행복감으로 여기기로 했다. 오래된 사이니까 그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