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입견

by 김대일

부옹富翁이 대형 사우나찜질방과 유서깊은 레스토랑을 둘째아들에게 넘겼지만 맏아들은 아버지의 사업체를 몽땅 물려받았음에도 사우나찜찔방에 딸린 최신식 휘트니스 센터에 눈독을 들이는 탐욕을 부렸다. 이유는 단 한 가지였다. 자기가 운동을 좋아해서. 맏아들은 소유주에게 의견을 묻지도 않고 자기 심복이라면서 트레이너 한 사람을 멋대로 센터에 꽂아 놓고는 센터를 총괄하게 했다. 오로지 맏아들의 비위만 맞추면 되는 트레이너는 이후 전횡을 일삼았다. 멋대로 사람을 부리고 멋대로 법인카드를 남용하면서 사우나찜질방 조직의 통제 밖에서 행세했다. 안하무인격으로 교만하던 트레이너는 맏아들의 비호로도 도저히 수습할 수 없는 추문이 떠돌고 과오까지 잇달아 저지른 전말이 드러나자 얼마 뒤 결국 쫓겨났다. 몸으로 먹고 사는 주제에 제 몸 하나 제대로 간수하지 못해 몰락을 자초한 셈이다. 파란만장했던 근육맨의 부침을 목도했던 나는 이후로 헬스 트레이닝 부류에 대한 편견이 싹텄고 엔간해서는 허물어지지 않을 선입견이 철옹성처럼 공고해졌다. 해당 분야와 관련한 전문적 지식은 장착했을지 모르나 소명의식이랄지 직업에 대한 최소한의 성찰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는 존재의 가벼움, 남이 알아듣건 말건 전문 용어랍시고 돼먹잖은 영어 나부랑이나 지껄이면서 문외한을 주눅들게 만들거나 프로틴이다 뭐다 해서 몸에 좋다는 것들을 홀짝거리면서도 다른 한 손엔 담배를 꼬나문 모순덩어리, 자기의 모든 걸 다 털어넣은 공력을 보상이라도 받겠다는 듯 우월한 피지컬을 미끼로 내걸고 인생 역전을 노리는 한탕주의자를 마다하지 않는 전시용 인간상의 속됨. 건전한 육체에 건전한 정신이 꼭 깃들라는 법이 없다는 걸 여실히 보여준 사례가 아닐 수 없었다.

고대 로마의 시인 유베날리스의 풍자시 중 한 문장은 "Orandum est ut sit mens sana in corpore sano"이다. 번역하면 "건전한 육체에 건전한 정신까지 깃들면 바람직할 것이다"이다. 건강하고 아름다운 육체와 정신을 함양하는 태도를 찬양하는, 우리가 익히 들어 잘 아는 격언으로 통용되지만 실은 유베날리스가 당시 신체 단련 열풍을 아주 못마땅하게 여긴 나머지 그런 풍조를 비꼬려고 했던 말이다. 기름을 발라 번질번질한 로마 시대 검투사들의 근육에 대한 유베날리스의 논평을 요즘 말로 풀면 이럴 게다. "이 근육만 키우는 멍청이들이 생각을 할 줄도 안다면 얼마나 좋으랴."(『상식의 오류 사전』, 발터 크래머, 괴츠 트랜클러/박영구, 박정미 옮김, 경당, 2001, 35쪽 내용 참고)

큰딸이 한 해 더 휴학을 강행하면서까지 다니는 일터는 장산역에서 가까운 휘트니스 센터다. 알바생에서 정식 직원으로 신분이 바뀌었어도 카운터 담당 업무는 변하지 않았지만 퇴근시간이 늦어졌다. 오후에 출근해 센터가 끝나는 야간까지 일한다. 센터를 운영하는 대표와 그녀의 아들이라는 실장이 같이 퇴근하면서 집까지 바래다 준다지만 집에 오면 보통 새벽 두세 시다. 간혹 센터 직원들 회식이라도 있는 날이면 귀가 시간은 더 늦다. 큰딸 사생활에 끼어들고 싶지 않아서 관찰자적 태도를 견지하지만 이것 하나만은 오금을 박았다. 휘트니스 센터 직원, 특히 트레이너와 연애질하다 걸리면 그길로 머리 깎이는 줄 알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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