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론

by 김대일

이런 여자배우에 마음이 간다. 메인스트림에서 살짝 빗겨났지만 그 누구도 범접하지 못하는 자신만의 연기 아우라를 탄탄하게 구축해놔서 어떠한 인물로든 이질감이 전혀 없이 꼼꼼하게 분하는 변신의 용광로가 내면에서 식지 않고 활활 불타오르는 내공의 소유자. 그런 배우는 설령 세월 따라 미색은 퇴색될는지 몰라도, 그것이 배우 본인한테는 큰 유감일는지 몰라도, 그녀를 흠모하고 추앙하는 이들에게는 오히려 축복이다.

일세를 풍미하던 화용월태花容月態​가 세월의 더께로 시나브로 그 윤기가 바래지고 몸통에서 곁가지로 전락하는 인생무상에 낙심할지언정 얼굴 뜯어먹고 사는 게 배우의 길은 아니라는 실존적 각성에 비로소 이르러서는 단선적 지문地文으로 데생만 했을 뿐인 대본 속 인물에 펄떡거리는 생생한 리얼리티를 덧씌우는 개가를 올리는 배우에게서 포정해우庖丁解牛의 도가 엿보인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머언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거울 앞에 선’ 중년만이 뿜어낼 수 있는 중후한 아름다움이야말로 은막의 화려함을 걷어내고 장삼이사의 보통 삶 속으로 파고들어 녹아듦으로써 빛을 더 발할 것이므로.

신작 영화나 드라마, 가수의 앨범 홍보 수단으로 변질됐지만 가끔 우리가 잘 아는 유명인의 잘 알지 못했거나 오해했던 삶의 이면을 본인에게 직접 듣는 기회를 제공해 준다는 점에서 프로그램의 효용가치가 아주 없지는 않은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배우 김소연이 출연했다. 올해로 데뷔 30년째라는 김소연은 내가 역설한 '여자배우론'에 가장 부합하는 배우이면서 내가 아는 한 가장 억척스럽게 연기에 진심인 참 예쁜 배우다. 그녀와 동시대를 살면서 자신이 맡은 캐릭터 그 자체로 화하는 데 능한 그녀의 변화무쌍한 연기력을 감상하는 건 큰 행복이다. 많은 유명인이 그 프로그램에 등장해 순탄하지만은 않은 인생 역정을 늘어놓아도 별 감흥이 없던 내가 새 배역을 맡으면 거기에 집중하느라 스스로를 잠적시키는 그녀한테 남편인 배우 이상우가 "소연아, 연기자인 김소연도 중요하지만 인간 김소연도 소중히 여겨줘. 나와봐, 꽃 피었어. 지금 바람 너무 좋다"라고 다독이는 말에는 감동이자 동감했다. 그렇다. 김소연은 나가서 흐드러지게 핀 꽃을 보고 한없이 살가운 바람을 만끽해도 좋다. 그래야만 그녀가 앞으로 펼칠 연기에 보다 더 윤기가 흐르고 생기가 돋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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