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거리 회담

by 김대일

세 든 건물 치킨 점방이 한동안 비어 있다가 근자에 임자가 나타나 새로 단장하느라 부산하다. 그제 간판을 달던데 치킨 대신 타코야키를 팔려나 보다. 주인으로 보이는 젊은 여자가 퇴근하려는 나를 보고 아는 체를 하며 꾸벅 인사를 했다. 머리 깎으러 오는 손님들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광경이 부럽다는 립서비스를 작렬하는 게 여간내기가 아닌 성싶었다. 빈말일지언정 그런 덕담 들어 기분 상할 인간은 없다. 나는 나대로 개업한 지 1년 넘어서야 겨우 일당 챙겨 갈 정도라며 엄부럭 떠는 대꾸를 했다. 잠자코 듣더니 "우리도 1년 넘게 고생을 해야겠군요"해서 근방에서 타코야키 파는 데를 본 적 없고 젊은 사람들도 많이 사는 동네니 금방 재미를 볼 거라고 받은 만큼 덕담을 듣기 좋게 되돌려 줬다.

주문한 기기가 언제 들어올지 몰라 개업일은 오리무중이라는 하소연을 듣는 것으로 길거리 회담을 접을까 하다가 빈 점방이 차면 최우선순위로 해결을 볼 용건이 문득 생각났다. 화장실 사용 건이었다. 남자 소변기야 내가 설치해 관리하니 따질 계제가 아니나 와식和式 화장실 사용은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였다. 마당 와식 화장실은 두 군데다. 한 군데는 국수집 전용이고 다른 한 군데는 예전 치킨 점방 남자 주인이 자기네 치킨 브랜드를 크게 복사 떠서 화장실 문 앞에다 떠억하니 붙여 놓고서는 배타적 사용권을 과시했다. 국수집 전용 화장실은 너무 좁았다. 여자보다 덩치가 큰 남자가 큰 볼일 보자면 구겨 들어가야 할 판이니까. 건강검진만 했다 하면 소화기계통 약만 한 트럭 처방받는 나는 그래서 치킨 점방 전용 화장실을 주로 찾긴 하지만 화장실 문 손잡이만 잡았다 하면 양상군자가 된 양 구접스러운 기분을 어쩌지 못했다. 주인 모르게 무단 사용하는 꺼림칙함 때문인지 화장실 드나들 적마다 치킨 점방 주인 눈치를 슬슬 보는 게 습관이 다 되었다. 문지방 닳도록 드나들더니 하루가 멀다고 지저분하다는 트집이라도 잡힐까 두려워 출입한 흔적을 없애려고 애를 무진 썼다. 여북하면 볼일 다 본 휴지를 화장실 안 휴지통에다 안 넣고 가져갔을까.

치킨 점방이 나간 뒤로 한두 달은 편하게 썼다. 자주 드나들었더니 정말 지저분해서 가끔 물청소도 해가면서 말이다. 희한한 건 다 쓴 휴지는 여전히 휴지통에 안 넣더라 내가. 아무튼 치킨 점방에 새 임자가 들어오면 화장실 청소는 정기적으로 할 테니 같이 좀 쓰자는 양해를 미리 구할 참이었는데 그제 저녁 길거리 회담이 딱 타이밍이었다. 그날 아침 출근하자마자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마침 화장실 청소를 해둔 것도 생색내면서 용건을 슬쩍 꺼냈더니 답변이 시원시원했다. 다행이다 싶었다. 휴지통에 마음 놓고 휴지 넣는 게 기분 좋아야 할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타코야키 여주인과는 어쩐지 말이 통할 듯도 싶어 내심 기대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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