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대회는 연암체燕巖體를 이렇게 분석해 정리했다.
첫째, 대상에 대한 다면적 접근과 입체적 묘사
둘째, 격식과 투식, 진부하고 상투적인 글자와 어투의 배격
셋째, 얕고 들뜬 문장, 용렬하고 속된 병통의 제거
넷째, 비유와 반어, 속어의 빈번한 사용
다섯째, 장난기와 유머의 분위기 (『조선의 명문장가들』, 휴머니스트, 2016, 106쪽)
만약 한문에 정통하다면 박지원의 작품만 파고들었을 게다. 한글 번역본을 읽으면서 안 들 수 없는 데데한 느낌은 박지원이 구축한 기발하고 파격적인 언어 세계, 즉 독특한 한문투를 오롯이 느끼지 못하는 내 무식함 때문이겠다. 당구공이 쿠션에 부딪혀 그 속도가 줄고 굴절이 되듯 다른 언어로 옮겨지면서 변질되기 쉬운 고유의 글맛은 읽으면 읽을수록 기갈만 더해 아쉬울 따름이다.
『열하일기』(고미숙 외, 그린비, 2008)를 다시 읽는다. 안 본 신문이 수북히 쌓이는 건 돌아가는 세상사가 별로 재미가 없어서인데 박지원에 기대서라도 일상의 전복을 획책하려 든다. 마침 압록강을 건너 연경을 향하던 사신단 일행이 요동 벌판에 들어서자 박지원이 "아, 좋은 울음터로구나. 크게 한번 울어볼 만하구나!"라고 외치는 대목에서 천지의 광활함에 맞닥뜨린 존재가 발산하는 무한 긍정 에너지에 새삼 감동하고 만 나는 아예 이참에 <호곡장好哭場>을 통째로 외워볼 작정으로 눈에 불을 켰다. 비록 한글로 옮겨졌으되 호방하고 빼어난 문장과 사유만은 답답한 심사를 탁 트이게 한다.
『열하일기』가 곁을 지키니 한동안은 지루하지 않을 게다. 같은 『열하일기』인데도 10년 전과 그 감흥이 판이한 까닭은 무엇일까. 필시 나이를 먹은 탓이다. 먹은 나이값을 하려는지 한 자 한 자 야무지게 곱씹었더니 우러난 감칠맛이 별쭝나다. 『열하일기』라서 행복하다.
<호곡장好哭場>
"훌륭한 울음터로다! 크게 한번 통곡할 만한 곳이로구나!"
정진사가 묻는다.
"하늘과 땅 사이의 툭 트인 경계를 보고 별안간 통곡을 생각하시다니, 무슨 말씀이신지?"
"그렇지, 그렇구 말구! 아니지, 아니고 말고. 천고의 영웅은 울기를 잘했고, 천하의 미인은 눈물이 많았다네. 하지만 그들은 몇 줄기 소리 없는 눈물을 옷깃에 떨굴 정도였기에, 그들의 울음 소리가 천지에 가득 차서 쇠나 돌에서 나오는 듯 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네. 사람들은 다만 칠정七情 가운데서 오직 슬플 때만 우는 줄로 알 뿐, 칠정 모두가 울음을 자아낸다는 것은 모르지. 기쁨喜이 사무쳐도 울게 되고, 노여움怒이 사무쳐도 울게 되고, 즐거움樂이 사무쳐도 울게 되고, 사람함愛이 사무쳐도 울게 되고, 욕심欲이 사무쳐도 울게 되는 것이야. 근심으로 답답한 걸 풀어 버리는 데에는 소리보다 더 효과가 빠른 게 없지. 울음이란 천지간에 있어서 우레와도 같은 것일세.
지극한 정情이 발현되어 나오는 것이 저절로 이치에 딱 맞는다면 울음이나 웃음이나 무에 다르겠는가. 사람의 감정이 이러한 극치를 겪지 못하다 보니 교묘하게 칠정을 늘어놓고는 슬픔에다 울음을 짝지은 것일 뿐이야. 이 때문에 상을 당했을 때 처음엔 억지로 ‘아이고’ 따위의 소리를 울부짖지. 그러면서 참된 칠정에서 우러나오는 지극한 소리는 억눌러 버리니 그것이 저 천지 사이에 서리고 엉기어 꽉 뭉쳐 있게 되는 것일세. 일찍이 가생賈生은 울 곳을 얻지 못하고, 결국 참다 못해 별안간 선실宣室을 향하여 한마디 길게 울부짖었다네. 그러니 이를 듣는 사람들이 어찌 놀라고 괴이하게 여기지 않았겠는가."
정진사가 다시 물었다.
"이제 이 울음터가 저토록 넓으니, 저도 의당 선생과 함께 한번 통곡을 해야 되겠습니다그려. 그런데 통곡하는 까닭을 칠정 중에서 고른다면 어디로 해당할까요?"
"그건 갓난아기에게 물어봐야 될 것이네. 그 애가 처음 태어났을 때 느낀 것이 무슨 정인지. 그 애는 먼저 해와 달을 보고, 다음으로는 눈앞에 가득한 부모와 친척들을 보니 그 얼마나 기쁘겠는가. 이 같은 기쁨이 늙을 때까지 변함이 없다면, 본래 슬퍼하고 노여워할 이치가 전혀 없이 즐겁게 웃기만 해야 마땅한 것 아니겠나. 그런데 도리어 분노하고 한스러워하는 감정이 가슴속에 가득하여 끝없이 울부짖기만 한단 말이야. 그래서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곤 하지. 삶이란 성인이든 우매한 백성이든 누구나 죽게 마련이고, 또 살아가는 동안에도 온갖 근심 걱정을 두루 겪어야 하기 때문에 세상에 태어난 것을 후회하여 먼저 스스로 울음을 터뜨려서 자기 자신을 조문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갓난아기의 본래 정이란 결코 그런 것이 아니야.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에는 캄캄하고 막혀서 갑갑하게 지내다가, 하루 아침에 갑자기 탁 트이고 훤한 곳으로 나와서 손도 펴 보고 발도 펴 보니 마음이 참으로 시원했겠지. 어찌 참된 소리를 내어 자기 마음을 크게 한번 펼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니 우리는 저 갓난아기의 꾸밈없는 소리를 본받아서, 비로봉 꼭대기에 올라가 동해를 바라보면서 한바탕 울어볼 만하고, 장연長淵(황해도의 고을 이름)의 금모래밭을 거닐면서 한바탕 울어볼 만하이.
이제 요동벌판을 앞두고 있네. 여기부터 산해관까지 1,200리는 사방에 한 점 산도 없이 하늘 끝과 땅 끝이 맞닿아서 아교풀로 붙인 듯 실로 꿰맨 듯하고, 예나 지금이나 비와 구름만이 아득할 뿐이야. 이 또한 한바탕 울어볼 만한 곳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