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추석 대목 앞에 한 무역상이 점방에 들러서 머리 깎고 염색한 것도 모자라 가외로 파는 탈모 예방 한방 쿨샴푸를 무더기로 사 간 적이 있었다. 그 이후로 무역상 부인이 그 쿨샴푸를 연거푸 사 가곤 했는데 가외 수입이 생겨 평상시보다 훨씬 상회하는 매상을 올리는데도 그녀가 왔다 가면 뒷맛이 영 개운찮은 게 문제였다. 개당 3만 5천 원하는 쿨샴푸를 3개씩이나 사 간 그제도 마찬가지였다. 뭐가 그리 미심쩍은지 '젊은 사람 장삿속이 좀 심한 거 아니냐'는 토씨 하나 안 바뀌는 진부한 멘트를 다시 꺼내드는 게 인신공격성 발언을 방불케 해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하여 그깟 삼푸 안 팔아도 좋으니 오늘만은 확실하게 단도리를 시켜야겠다는 마음을 먹기에 이르렀다.
빌미는 그들이 먼저 제공했다. 무역상이 처음 점방을 찾았던 작년 9월경으로 돌아가 보자. 머리 피부가 민감해 염색하는 데 애를 먹는다기에 점방에서 추천하는 한방 염색약(개당 1만 원)으로 염색을 해줬고, 두피 가려움증에 효과가 좋다는 한방 쿨샴푸 광고에 관심을 가지길래 제품에 대한 설명을 부연해줬더니 개당 3만 5천 원하는 쿨샴푸를 4개나 사는 무역상을 왜 그리 많이 사느냐고 깎새가 제지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그로부터 이틀 뒤, 부인까지 대동하고 다시 점방을 찾은 무역상이 저번에 산 거 5개 더 사겠대서 쿨샴푸 5개를 건네줬는데 달랑 5만 원만 주길래 샴푸는 개당 3만 5천 원이라고 정정해줬다. 알쏭달쏭해하다가 제 값 다 치른 무역상은 제지하는 부인을 뿌리치고 휑하니 사라졌다. 그로부터 5분쯤 지났으까. 낯선 여자 목소리로 방금 산 샴푸 환불하겠다는 전화가 걸려왔다. 무역상 부인이었다. 남편이 그제 발랐던 염색약하고 샴푸를 혼동했다면서 없던 일로 하자며 환불했다. 그로부터 또 1시간쯤 지났을 무렵, 무역상 부인이 다시 점방 문을 열고 들어와서는 샴푸 2개를 사갔다. 아마도 샀다 말았다 하는 짓이 외국을 오가며 물건 사고 파는 무역상으로서 가오 빠진다고 여겼던 모양인지 부인을 시켜 샴푸 2개를 더 사는 선에서 체면치레하려는 수작이었던 게 분명했다(<무역상과 샴푸 1~2>, 2022.09.06~07).
깎새는 억울했다. 민감한 머리 피부라고 해서 자극 덜한 염색약으로 염색을 해줬을 뿐이고 관심을 가지길래 제품에 대한 설명을 해줬더니 손님이 자발적으로 샴푸를 사갔을 뿐이다. 순진한 자기 남편으로 하여금 1만 원짜리 염색약과 3만 5천 원짜리 샴푸를 교란시켜 비싼 제품을 구매하게 꼬드기는 잔꾀를 부린 적도 없고 부릴 까닭도 없다. 그럼에도 무역상 부인은, 자기도 남편과 샴푸를 나눠 쓴다고 자기 입으로 말해 놓고서는, 장삿속이 심하다는 둥 염장 지르는 소리를 버젓이 내뱉는다. 전가의 보도인 양 개업때부터 작성한 장부를 꺼내 든 깎새.
- 사모님, 작년 9월 바깥어르신 오셔서 구매한 내역이 여기에 다 적혀 있어요. 그래서 그날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제가 다 알거든요. 보여 드려요?
대답이 궁한지 샴푸나 얼른 달라고 하면서 뻔히 아는 샴푸 값을 또 묻는다. 3만 5천 원이랬더니 뭐가 그리 비쌰냐고 대든다.
- 사모님, 하루가 다르게 오르는 물가를 사모님이 더 잘 아시잖아요. 해 바뀌고 샴푸값도 4만 원으로 올랐지만 마진 안 남기고 3만 5천 원에 파는 중입니다. 뻔히 아시면서 이러시면 제가 더 곤란합니다.
샴푸 샘플이나 넉넉하게 달라는데 다 떨어져서 줄 게 없다고 했더니 샴푸값도 비싸, 단말기 없다고 카드로 계산도 못해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다고 또 시비조다. 오늘 일 내겠다 싶어 심호흡하면서 마음을 가다듬은 뒤 탕비실로 들어간 깎새는 뭔가를 꺼내 들고는 무역상 부인 앞에 들이밀었다.
- 샴푸 만드는 회사에서 나오는 헤어 테라피인데 가격으로 따지면 샴푸값 못지않습니다. 양도 많고요. 샴푸 자주 많이 팔아주시는 단골께 감사의 표시로다가 그냥 드리는 겁니다. 샘플은 다음에 챙겨드리겠고요.
다음번 와서도 장삿속 운운하면 그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