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의 나그네
이장희
님이 오시나보다
밤비 내리는 소리
님 발자욱 소리
밤비 내리는 소리
님이 가시나보다
밤비 그치는 소리
님 발자욱 소리
밤비 그치는 소리
밤비 따라 왔다가
밤비 따라 돌아가는
내 님은 비의 나그네
내려라 밤비야
내 님 오시게 내려라
주룩주룩 내려라
끝없이 내려라
님이 가시나보다
밤비 그치는 소리
님 발자욱 소리
밤비 그치는 소리
(며칠째 내리는 비가 지겹다. 하지만 이장희는 생각이 완전 딴판이다. 비가 내려야 님이 오시니 주룩주룩 끝없이 내리라고 성화니 말이다. 고종석이 이장희가 부른 노래에 토를 단 게 있다. 그걸로 시 감상을 갈음할까 한다. 이장희는 아직 울릉도에 사나 몰라.
1970년대에 가수 이장희씨가 만든 「비의 나그네」도 비와 사랑을 포개고 있다. 노래 「비의 나그네」에서 화자가 님과 함께 있을 수 있는 것은 밤비가 내리는 동안뿐이다. 밤비가 내리는 소리는 님이 내게로 오는 '발자욱 소리'('발소리'라고 해야 할 것이다)와 포개지고, 밤비가 그치는 소리는 님이 내게서 떠나는 발자욱 소리와 포개진다. 그래서 화자는 밤비가 끝없이 내리기를 바란다. 그래야 님이 그의 곁에 계속 머물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 노래에서 중요한 것은 비 못지않게 밤일지 모른다. 날이 샌 뒤 내리는 비는 이미 밤비가 아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화자가 정말 바라는 것은 '끝없이 내리는' 비가 아니라 '영원히 계속되는', '결코 새지 않는' 밤일지 모른다. 그 점에서 「비의 나그네」는 고려 속요 「만전춘 별사」에 닿아 있다.
어름우희 댓닙자리 보와 님과 나와 어러주글망뎡
정情둔 오낤밤 더듸 새오시라 더듸 새오시라
얼음 위에 댓잎 자리에서 얼어죽을 망정, 그 밤이 님과 정을 나누고 있는 밤인 이상 되도록 더디게 샜으면 좋겠다는 이 노래의 가인歌人은 말한다. 최고의 사랑은, 극도의 정열은 늘 이렇게 치명적이다. (『말들의 풍경』, 개마고원, 2007, 30~3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