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컨 설치기사로 경력을 쌓는 중이라는 손님은 작년 3월 점방 개업한 이래 매달 한번씩 꼭 출근부를 찍는 단골이다. 입담 좋은 손님은 20분이 채 안 되게 점방에 머무는 동안 기승전결이 완벽하게 구비된 얘깃거리 한두 꼭지 풀어놓고 가는 신기를 부리곤 한다. 그런 그가 엊그제 들렀을 때 산복도로를 화두로 삼아 한참 열을 올리던 도중에 영화배우 허성태를 불쑥 끄집어내는 게 아닌가. 중학교 동기라나. 원래는 산복도로가 지나가는 부산 좌천동 어디쯤에 있는 자기가 나온 중학교에 대해 본격적으로 썰을 풀려는 의도였다가 유명인이 된 중학교 동기 허성태가 떠오른 김에 옆길로 샌 꼴이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연상 작용이 볼만했다. 호기심이 동한 깎새가 꼬리를 덥썩 물었다.
- 어, 내가 나온 고등학교랑 운동장 같이 쓰던 덴데?
- 거가 중학교, 고등학교가 같이 붙어 있다 아입니꺼.
- 혹시 허성태가 그 고등학교 나왔음 내 후밴데.
- 글마가 그 중학교 나온 건 확실한데 고등학교를 어데 다녔는지는 모르겠심더. 프로필에도 안 나온다 카던데.
깎새 확인 바로 들어갔다. 인터넷 인물사전을 뒤져 보니 반갑게도 깎새가 다닌 고등학교는 물론이고 대학교까지 5년 터울로 따라 지르밟은 후배였다. 부산대학교 노어노문학과를 나왔다고 하니 고등학교에 이어 대학교 건물(인문관)도 같이 쓴 그야말로 직속 후배 되시겠다. 일면식이라고는 전혀 없고 앞으로도 만날 일이 별로 없을 영화배우가 오래 알고 지낸 동생처럼 여겨지는 순간이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감회에 젖은 깎새를 현실로 복귀시켜 준 이는 다름아닌 단골이었다.
- 내는 중학교를 가고 싶어도 못 가예 이젠.
산복도로가 촉발한 영화배우 프로필이 흥미로워지는 것도 잠시, 모교가 맞닥뜨린 냉혹한 현실에 급작스레 우울해져 버렸다. 깎새가 다녔던 고등학교와 운동장을 같이 썼던 중학교는 2020년에 완전 폐교됐다. 원도심 청소년 인구가 급감해 학생 유치에 애를 먹다 그리 됐다는데 고등학교도 남 일이 아닌 성싶다. 높다란 전망대를 연상하는 교정에 서서 부산항을 바라보던 고교 시절을 돌이켜보자면 의외로 낭만적이었다. 학교를 끼고 돌던 산복도로가 거기에 있어서 그 풍경이 완성된 것이라면 산복도로는 더 이상 도로가 아니다. 청소년기를 살지게 한 자양분으로 가치를 헤아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산복도로 4 - 明童이
강영환
무동을 타고 아이야
바다를 보아라
네 눈의 높이까지 바다를 이끌고
바다 속 깊이까지 속속들이
제방을 타고 넘는 속마음을
무동을 타고 아이야
우리들이 지닌 수족으로 갈 수 없는
수면 위로 명멸하는 금은의 나라
지켜 선 등대
담 너머에서는 무엇이 이루어지는가를
꿀 먹은 눈으로 손짓해
키 작은 아이에게 일러주며
무동을 타고 아이야
산지가 많고 평지가 좁은 부산의 원도심, 특히 동구, 중구, 서구 일대 해안은 산지가 발달해 있다. 일제 때 동구 수정동, 범일동 일대와 중구 중앙동 일부, 남구 우암동 일부에 이르는 해안을 매립, 방대한 매축지埋築地를 조성해 일본인 구역으로 개발되었다. 때문에 개항 이후 부두 노동자로 일자리를 찾아 들어온 외지인들은 경사진 산지를 따라 올라가며 무허가 판자촌을 짓고 정착했다. 6·25 전쟁을 거치면서 부산으로 몰려든 피란민들은 기존 정착지에서 더 위쪽 산지까지 누추한 판자촌 마을을 형성하며 부두 노동자나 시장 일꾼으로 생계를 유지하였다. 전쟁이 끝난 뒤 1960년대 산업화가 본격화되자 이농 인구까지 몰려들어 산동네는 그야말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그런 산동네에도 길은 필요했다. 산복山腹은 산허리를 뜻하고 산복도로는 산 경사지를 개발하면서 빚어놓은 도로다. '망양로望洋路'는 범천동에서 범일동, 수정동, 초량동을 거쳐서 중구 영주동까지 10km 넘게 이어진 도로로 부산 산복도로 중에서도 유명하다. 이름이 말해주듯 도로에서 바다가 보인다.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건 큰 재산이다. 같은 해운대라도 바다가 보이는 아파트와 그렇지 않은 아파트는 가격 차가 제법 난다. 서울은 한강 조망권이 부동산 매매에 웃돈으로 작용한다지 않나. 아무튼 바다든 강이든 물만 보였다 하면 사람들은 환장을 한다. 그런 식으로 따지자면 대문을 박차고 창문만 열어젖히면 부산 앞바다가 내 집 마당같이 훤히 펼쳐져 있는 망양로 산복도로 사람들은 찐부자다.
평지적 패러다임에 빠져 차별과 혐오라는 냉랭한 시선에 주눅이 안 든 건 아니었지만 드넓은 대양을 앞마당으로 둔 사람들답게 산복도로 사람들은 그 모든 걸 껴안고도 남을 배포가 크다. 사는 게 궁색할지언정 살가운 사람 냄새가 물씬 풍긴다. 남루할 수는 있으나 거치적거릴 것 없는 자유가 또한 넘친다. 산복도로는 그래서 여전히 낭만적이다.
산복도로 -> 비단성錦城중학교 -> 허성태 -> 비단성錦城고등학교 -> 산복도로로 이어지는 즐거운 연상 작용이었다.